등산은 힘들게 올라온 만큼 가슴이 벅차오르다
요즘 2월의 날씨는 봄 같다. 마을 돌담에 매화가 향긋하게 꽃을 피웠다. 땅에는 새싹들이 얼굴을 내민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등산하기에도 좋은 날씨다. 하지만 정상에는 아직 녹지 않는 살얼음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영남알프스 중 가장 높은 산인 가지산(1,241m)을 끝으로 8개 봉을 완등하는 날이다. 작년에 오르지 못한 산들을 시간 되면 다른 스케줄보다 먼저 챙겼다. 1월 9일(화) 간월산을 시작으로 마지막 가지산까지 2월 16일(금)로 정점을 찍었다.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중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올 때가 쉽지 않은 산이다. 너럭바위와 돌이 많았고 데크도 의외로 오르기 힘들었다. 좁은 바위를 통과할 때는 밧줄로 이용하여 가야 한다.
가지산 등산코스는 운문령 ~ 쌀바위 ~ 정상으로 가는 임도 산행길 코스와 석남터널 ~ 중봉 ~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나는 들머리를 석남터널로 정했다. 아이젠과 스틱, 장갑, 생수 등을 단단히 챙겼는지 확인하고 올랐다.
들머리부터 오르막길이다. 나무데크를 오른 길은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든 여정의 시작이다. 오르막 끝에 도달하면 쉬운 고갯길이 열린다. 중봉까지 오르면 저 멀리 가지산의 정상이 보인다. 눈으로 보면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아득하게 멀다. 중봉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려 진흙길로 변했고 눈이 녹지 않는 곳도 많았다. 겨울산은 헐벗어도 고유의 겨울산행만큼이나 피부로 와닿는다.
잠시 너럭바위에 앉아 목도 축이고 경치도 맛본다. 이 바위에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갔을까? 등산을 하면 산의 모든 것들이 쉼터요, 마음의 안식처다. 고요한 명상이 따로 필요 없다. 산은 많은 것을 내어준다.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고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좋아하는 산을 오르는 것은 채운 것들을 깨끗이 비워내는 일이다. 두렵고 흔들리는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게 산은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정상을 향해 올랐다. 정상에 가까이 올수록 겨울산만의 풍경이 나타났다. 추울 줄 알았던 정상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저 멀리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설경의 장관이 펼쳐졌다. "가지산은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라고 등산객들의 입을 모으는 이유를 알겠다.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었고 전송했다. 산을 좋아해서 올랐지만 더 감명 있고 벅찼다. 영남알프스는 누구나 쉽게 오르지는 못한다. 오르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산을 잘 아는 분과 동행하면 좋을 것 같다.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마음의 풍요를 느껴본다. 가지산장에 먹는 라면 한 그릇은 포만감을 더했고 맛 또한 좋았다. 산장 안에는 가지산에 오른 등산객의 사연들이 망명록에 빼곡하게 담겼다. 친구나 동호회, 연인과 함께 오른 산의 이야기와 추억들이 페이지마다 삶의 희로애락의 문장들로 가득 찼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지 않는 너럭바위와 작은 새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눈에 띈다. 삶도 비슷하다. 바쁘게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일 뿐이다. 힘들었던 여정의 시간이 지나면 올랐던 그 기분으로 다시 일상을 시작한다.
나에게 산은 또 다른 일상의 시작이요, 나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담아내고자 함이다. 영남알프스 완등은 끝났지만 계절마다 아직 못 오른 경남의 산을 올라갈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2.20일자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