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 청소년, 교사와 함께 책 모임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읽은 책의 주제는 다양했다. 소설, 역사, 에세이, 고전, 사회과학 등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읽고 나누는 일 년의 과정이 그 어떤 모임보다 가치가 있는 것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경험들이 뿌리처럼 단단하게 엮어간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주제가 만들어낸 책의 능동적인 움직임 속에 질문의 크기가 확장되는 것에 우리는 스스로 물음을 열고 느끼고 공감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이 긍정적인 결과로, 모임에 참여한 한 학생은 뚜렷하게 자기주장이 늘었고 어떤 여교사는 책 속의 밑줄을 긋고 보물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우린 수많은 결핍과 견해의 엇갈린 차이를 느끼며 삶의 건강한 문장부호를 익히는 것에 타인의 삶에 닿았고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책 벗들의 마음을 살피는 과정 또한 좋았다.
혼자 읽는 힘은 꾸준히 독서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그 가능성을 책 모임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었다. 6년째 활동하는 모임은 의무적으로 ‘함께 읽기’가 가지는 어떤 힘을 내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처럼 단단한 생활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것’은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 다른 문장의 구절에서 멈출 때도 있고 어떤 문장에서 오래 생각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책 모임의 성공 열쇠는 독서 행위보다는 책이 던지는 주제에 대한 깊은 고민에 있다. 이런 과정에서 책의 깊이가 확장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단절과 고립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천히 읽고 깊이 나누는’ 경험이 필요하다. 책 모임이 좋은 예다.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 모임은 함께하는 가치의 실현 중 삶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활동이다.
책 읽기는 혼자만의 고립된 행위지만 책 모임은 이런 고립을 공동의 사유로 바꾸는 독서 활동으로 단순히 독서를 넘어서 느리지만 깊은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와 공감이라는 자세가 키워진다. 서로의 독서경험을 나누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한 것들이 바뀔 수 있다. 기후위기, 환경, 정치, 도시 정원, 건축, 사회적 역할 등 긍정적인 변화의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생각의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지녔다.
김설의 ‘난생처음 독서 모임’에서 “자기가 참여하는 건 분명히 독서 모임이지만 그 신비로운 순간은 단순히 책에만 있지 않다고 했다. 책과 자기의 마음과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 사이사이에 난 길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모임은 작지만 반짝이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우리 삶의 곳곳에 뿌리내린 책 모임 중 한 곳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해 율하 동네 책방 ‘숲으로 된 성벽’에서 7년째 책으로 마음을 잇고 있는 ‘작당’ 모임이다. ‘작당’은 기형도의 시 ‘숲으로 된 성벽’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작은 당나귀’의 줄임말로 작당은 한 패의 무리를 이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14명)들이 모여 매월 마지막 수요일 밤 7시 동네 책방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책 선정은 범위가 넓습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가질 법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선정해서 읽습니다. 작가 초청 강연이 자주 있으므로 만나게 될 작가의 책을 미리 같이 읽기도 하고요. 6월에는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임은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서로 나누고, 생각한 질문을 던지고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즐긴다.
“책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모임에 못 오더라도 함께 나눌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각자 읽어 나가는 시간이 중요하겠지요. 우리 모임의 자랑은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진 회원들이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작당 모임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회원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의 폭을 넓혀나가며 사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책 모임은 ‘책연(冊緣)’으로 맺어진 환대의 공동체였다. 누구에게나 독서 모임을 꼭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삶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라고. 내 생각과 삶의 방향을 정리하는 책 모임의 시간은 알에서 깨어나듯 성장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책 읽기의 좋은 방법의 하나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은 우리 모두에게 자부심을 주는 의미 있는 존재”라고 말한 원하나 작가의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 글은 6.24일자 경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