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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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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28. 2022

어쩌면 꼭 거쳐야 할 시간

집 짓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중단한 채 쉬고 있는 동안, 하루는 초등학생이던 아이와 대화하다가 엄마인 나의 실패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땅 찾기를 내려놓고 있던 시간, 열심을 내고 있지 않다는 자책감이 들어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어릴 적 꿈인 치과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번 도전했지만 엄마가 열심히 하지 않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 아이는 듣더니 "집짓기 꿈을 향해서는 엄마가 책도 읽고 땅도 보러 다니고 열심히 하고 있잖아."라고 말해 주었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땅도 사고 집도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초등학생 아이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두 보고 있다. 목표를 정해 열심히 달려가고 그것을 성취해 내는 것을 내 삶으로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가다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이 아니라 묻고, 기다리며, 듣고, 실행하며 극복해 나가는 삶의 본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의 일상을 잘 살아내는 모습, 내게 주어진 삶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그런 삶의 모습이다.


나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집인가? 아니다. 내 삶을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에 집 짓기라는 하나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집 짓기를 하면서, 지난 시절 친정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갑자기 집을 잃고 떠돌았던 때의 상처를 보았다. 치과의사라는 꿈을 향해 도전했다가 몇 번이고 실패하며 입은 상처를 보았다. 실패가 너무 아파서, 혹은 집짓기에 성공해서 그 상처를 극복하겠다고 집착해서 선선히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냈다. 


집 지을 땅을 찾으러 돌아다닌 시간은 겨우 1~2년에 불과했는데 하루하루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는 것이 그렇게나 힘들었다. 기다림이 힘들었다. 확신과 소망으로 시작한 집 짓기였지만 우리 집이 과연, 정말로 지어질 것인지 불신과 비관이 깊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은 신뢰가 있다는 증거이다. 기다리면 결과가 주어질 테니까. 내가 늘 매사에 안달복달하는 건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신에 대한 신뢰가. 기다리면서 견디는 것을 배우며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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