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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짓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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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Apr 28. 2023

우리 가족은 이런 사람이고요

우리가 원하는 집은 이런 집입니다.

건축가와 상담 전에 우리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왜 집을 짓게 되었으며, 어떤 집을 짓고 싶어 하는지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족소개]

남편은 김 OO (19**년생, 소프트웨어엔지니어), **** 근무,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은 주로 집에서 스마트폰, 태블릿을 하며 방이나 거실 소파에서 쉼. 당구, 기타, 바둑, 컴퓨터에 붙어있기가 취미입니다.

아내는 김 OO (19**년생, 주부 겸 프리랜서), 결혼 전 산업교육 관련 월간지, 이러닝 업체에 근무했으며 현재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합니다. 독서, 첼로, 정리정돈, 글쓰기, 여행, 단순한 삶 연구 등 취미부자이며, 기독교인입니다.

아들은 김 OO (20**년생, 초등3학년), 레고, 독서, 바이올린, 친구들과 놀기가 취미이며, 꿈은 과학자, 건축가 등등입니다.

세 식구 모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정적이고 내향적인 편입니다.


[왜 집을 짓고 싶어 하나]

남편은 재산가치 하락 우려로 아파트 소유를 반대했고(당시 집값이 떨어지던 상황이었음), 단독주택은 집 관리에 대한 귀찮음으로 반대, 평생 전세살이를 주장하던 중 전세가 폭등 및 매물이 실종된 현실과 아내의 성화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집 소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10년 차를 넘어가면서 전세살이에 피곤을 느끼고 아이 초등학교 진학에 따른 정착욕구가 강해졌으며, 성장기에 13층 아파트에 살았으므로 땅을 밟으며 살고 싶은 욕구가 있어 마당이 있고 내 필요와 취향에 맞는 집을 짓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아들은 마당 있고 다락방이 있는 집이라면 무조건 찬성합니다.

그래서 집을 소유한다면 우리에게 맞는 단독주택을 짓자고, 많은 대화(싸움) 끝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집을 짓고 싶어 하나]

땅 위치는 용인시 OO구 OO동 ***번지, 281.5 m2 (약 85평), 건폐율 40%(1층 최대 가능면적 약 34평), 용적률 80%(가능한 최대 면적 약 68평), 2층 이하 1세대만 지을 수 있고, 예산은 O억 O천 정도, 20**년 *월 경 입주 희망하며 40평 정도로 짓기 원합니다. 원하는 공간은 합주실 겸 남편공간, 주방 겸 아내의 책상공간, 기도실, 시선차단 된 마당, 거실, 당구장, 화장실 2, 세탁실과 빨래 너는 곳, 현관 및 현관창고, 드레스룸과 테라스가 있는 안방, 다락방 있는 아이방입니다.


남편은 당구 마니아로 당구대 놓기 원하며, 답답한 느낌 없고 가슴이 트이는 널찍한 실내 공간 한 군데쯤 있으면 하고,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튀지 않고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을 좋아합니다. 무릎이 안 좋으므로 계단 최소화, 귀찮은 일 없이 넓고 시원하며 쾌적하고 편한 공간을 원합니다.

아내는 시선 차단된 마당 공간에 잠옷 입은 채로 햇볕 쬐고 줄넘기하고 책 읽는 로망이 있고, 높은 천장이나 유리문으로 구획하는 등 개방감 있고 밝은 실내공간을 좋아합니다. 가구 등 살림을 최소화하여 단순하고 절제된 집을 추구합니다. 평온하나 정체된 느낌이 아닌 활기찬 생활을 했으면 하고, 곰팡이 없고 환기 잘 되는 집을 원합니다.

아이는 화장실이 방과 가까이 있고 욕조가 있으면 좋겠고, 장난감과 포스터 등을 붙일 벽이 많았으면 하고, 새집에서 엄마아빠가 잘 놀아주고, 티비도 많이 보고, 마당에서 바비큐 하고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답니다.




남편은 평범하고 무난하며 익숙한 모습의 집을 원했다. 뭐든 튀는 걸 싫어하고 조용한 그의 성격답게. 그리고 널찍널찍한 집을 원했다. 손님 열 명 이상이 와도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편하게 놀 수 있으면 좋겠고, 자기 방도 널찍, 침실도 널찍, 거실도 널찍하면 좋겠단다. 그가 자란 집에 대한 기억은 좁고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집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 집에 대한 남다른 기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집에 대한 바람 자체가 별로 없었고 기대도 크지 않았다. 새 집에 당구대와 음악실이 있으면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 없어도 좋다고 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가기보다 상황에 따라 단념을 잘하고 그것을 크게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강력히 원했던 것이 있는데 집 관리가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말에 집을 관리해야 하는 것 때문에 쉬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었다.


아이는 새 집에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자기와 잘 놀아 주면 좋겠고 집에서 TV도 실컷 보고 싶단다. 마당에 큰 테이블을 놓고 북적북적하게 바비큐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오면 좋겠단다. 포스터와 그림 같은 걸 붙일 벽이 많으면 좋겠고, 마당과 다락방은 무조건 찬성이란다. 놀이방을 따로 만들지 말고 엄마가 늘 보이는 곳에서 놀면 좋겠고, 반신욕을 좋아해서 욕조도 꼭 있으면 좋겠단다.


내가 원하는 집의 분위기는 평온하지만 정체된 느낌이 아닌 생기 있는 느낌이었다. 통풍과 채광이 잘 되어 곰팡이가 없을 것, 바닥과 벽의 마감색도 밝은 톤으로 해서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가 밝을 것.


처음 집을 짓기로 결심했을 때 가졌던 로망은 따뜻한 마당에서 햇볕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것 그 한 가지였다. 그러나 집에 대한 자료를 모으다 보니 로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위시리스트가 차고 넘치게 되었다. 좋아 보이는 것은 이것저것 다 로망의 리스트에 올렸기 때문이다. 기도실은 꼭 있어야 할 공간, 현관은 넓고 깨끗하고 밝으면 좋겠고, 세탁실은 빨래를 널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어느 한 벽은 파벽돌로 하는 것도 좋겠고, 어느 곳은 천장이 높으면 좋겠고, 어느 곳은 천장이 낮아 아늑한 동굴 같으면 좋겠고 등등. 나중에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상반되는 것을 원하고 있기도 했다. 좁지만 넓은 집, 작지만 큰 집 이런 식으로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갔달까. 너무 많은 욕심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해 다 쥐고 있었달까. 시간이 갈수록 한껏 눈이 높아져 카페나 갤러리 같은 멋들어진 공간을 내 집으로 그렸다.


혼자 살 집이 아니기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집을 구체적으로 그려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기 원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각자 원하는 게 달랐고 그걸 조화롭게 맞춰서 하나로 만드는 일은 즐겁기보다 종종 싸움이 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족의 의견이 하나로 모인 때도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였는데, 3년 좀 안 되게 전세로 살았던 아파트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집에 대한 기억은 가족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30평이 안 되는 아파트였지만 방과 거실이 우리가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널찍널찍했고 화장실도 2개가 있어 편리했다. 거실 창으로 탁 트인 산이 보였고 햇볕이 잘 들었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 이사 나오게 되었지만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 큰 이견이 없었다. 각자 그 집에서 좋았던 부분을 새 집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집을 지으며 여러 가지 로망으로 한껏 부풀었던 풍선이 가라앉아 현실에 맞게 지금 이 집이 선물로 주어졌다. 부족한 부분이 많을지라도 훗날 이 집을 추억할 때, 전세아파트에 대한 좋았던 기억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하나하나 그 추억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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