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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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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24. 2022

어디든 가리라.

우리 땅은 어디에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를 이끌고 땅을 보러 다녔다. 어느 날은 내 땅을 거의 다 찾은 것 같다 싶었는데, 어느 날은 송두리째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 땅이 나타났을 때 알아채기 위해 계속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땅을 보러 다니면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의 완벽한 땅이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온갖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을 반복했다. 


어떤 땅은 처음 봤을 땐 괜찮다가도 다시 가보면 별로이고 객관적으로는 좋은 땅이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오지 않기도 했다. 누군가는 행복하게 살 집이지만 우리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경우였다. 땅을 선택할 때 투자가치와 주변 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체크 리스트와는 별개로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는지, 정이 가는지 등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적인 느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네이버 부동산에 접속하여 관심이 가던 택지지구의 매물을 둘러보던 어느 날, 땅 매물을 많이 내놓은 부동산이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시원시원한 스타일의 부동산 아주머니가 택지지구의 토지 매물을 표시한 지도 3장을 보여주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가란다. 지도를 보며 혼자 돌아다녀 보란다. 오, 조용히 혼자 살펴볼 수 있다니 나에게 딱 적합한 투어가 아닌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기뻤다.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지도에 표시된 매물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각각의 토지가 주는 느낌에 집중하다 보니 내 취향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한쪽 면은 녹지, 남쪽으로는 주택이 있고 북쪽으로는 도로가 있어 트여 있는 땅이 안정감이 있게 다가왔다. 매물로 나온 땅 중에 그런 편안한 느낌의 땅 하나가 눈에 쏙 들어왔다.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가 문의하니 마음에 든 그 땅의 가격은 생각보다 꽤 높았다. 부동산에서는 가격 협상의 의지가 없었다. 급할 게 없는 땅이었다. 조금 실망한 마음으로 다시 그 땅으로 가보았다. 이미 날은 저물어 깜깜하고 가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 땅이 우리 땅인지 골똘히 생각하느라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 땅을 서성이고 있는데,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웃 분과 마주치게 되었다. 무작정 그분에게 말을 걸어 땅에 대해 물었다. 우산도 안 쓴 웬 여자가 깜깜한 밤에 갑자기 말을 붙였으니 그분은 좀 놀랐지만, 이 땅은 종중 소유라서 개인 땅이 아니라 소유권이 복잡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순간 이 땅도 우리 땅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그대로 지쳐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엎드렸다. 


이 어둠과 빗속에서 난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 이렇게도 쫓고 있는 건지, 언제까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야 하는지. 허망한 마음을 추슬러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사촌 동생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사촌 동생은 오랜 시간 미국 유학 준비를 했는데, 원하는 조건의 학교에서는 하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실망을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으로 미국뿐 아니라 유럽까지 곳곳에 원서를 썼다고 한다. 한 학교에서 콜링이 왔는데 자신이 원래 원했던 조건과는 아예 반대되는 항목도 있었지만 모든 걸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남편의 연구원 자리까지 해결이 되어 결국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껏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잘해오고 있다.


사촌동생처럼, 어디든 가리라는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리셋해보자고 생각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욕심이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지 아닌지도 잘 모른 채 이것저것 조건을 앞세우며 욕심을 냈다. 차분히 조건을 따져 좋은 땅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조건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지, 고집스러운 욕심은 아닌지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분별이 어려워서 일단 다 내려놓았다. 그러니 다시 기쁨과 소망, 기대가 차 오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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