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별
우리 부부가 집을 짓기로 결심한 때는 기존에 전세로 살던 집이 팔려 이사를 나와야 할 때였다. 당시 전세로 살던 집은 거실 창으로 산이 한 가득 보이는 밝은 아파트였다. 이사 준비를 하며 문득문득 이 집을 정말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평생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집이 인격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산으로 열린 거실 창이 마치 집의 두 눈처럼 느껴졌다. 집은 두 눈에 푸르른 나무를 가득히 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더니, 집도 우리 가족과의 이별을 앞두고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장 넓게 살아 본 30평 아파트. 거실의 통창으로 푸른 산이 가득 보이는 넓고 쾌적한 거실, 방이 세개여서 세 식구 살기에 부족함 없고, 새 아파트라 모든 게 반짝반짝 했던 집이다.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전세 살이를 하면서 그 어느집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더랬다. 넓고 깨끗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이 가까우니 집에 오면 늘 자연이 나를 맞아주고 품어준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면 거실창을 통해 보이는 나무와 햇볕이 따뜻하게 나를 반겼기에 집에 돌아오면 늘 안도감이 들었다. 결혼 후 내내 전세를 전전하면서 그 어느 집에도 정을 주지 못했는데 이 집에는 정을 듬뿍 주었다. 내 집이 아니어도 새집에 따르는 하자보수도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꼼꼼히 받았다. 주방 싱크대 문짝을 반짝이게 닦으며 언젠가 다음 이사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다. 집을 통해 산과 빛이 품어준 사랑이 그렇게 흘러갔다.
집 주인이 매매로 내놓았을 때 팔리지 않던 집이 드디어 다음 주인을 만나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왜인지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난 이유 중 이 집과의 이별이 아쉬웠기 때문이 가장 컸으리라. 집과 이별을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가 꿈에 나왔다. 평소에도 종종 꾸는 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부터 고3이 될 때까지 주요한 성장기를 보낸 13층 29평 아파트. 그 집과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더랬다. 고3이 되었을 때 집안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를 주고 나왔다. 그 때는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영 이별이 되었다. 그 때 미처 하지 못했던 이별인사를 이번 집을 떠나면서는 충분히 했다. 마음껏 슬퍼했다.
새 집 짓기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나는 먼저 이별의 순간을 지났다. 지나온 이별의 순간도 떠올리며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별을 뒤늦게나마 슬퍼할 수 있었다.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거쳤기에 거실 창으로 산이 가득 보였던 그 아파트는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고 새 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