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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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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14. 2022

집 지을 땅을 찾으러 나가자

짓기에 대한 책을 읽을때면 집 짓다가 10년 늙은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고생 이야기마저도 나에게는 하나같이 온통 설렘으로 다가왔다. 결심하기가 힘들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얼마나 신이 날까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어렵게 남편의 동의를 얻어 집을 짓기로 결심한 후, 신나기는 커녕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을 짓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감히 시작하지도 못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실패할까 두려워 옴짝달싹 못했다. 다음 스텝을 내딛어야 하는데 좀처럼 발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시간만 보냈다. 땅을 찾으러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집에서 LH홈페이지를 통해 토지 분양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땅 찾는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내딛은 다음 발걸음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 부동산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긴 했지만, 나름대로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을 내딛었던 거다.


그러다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드디어 밖으로 나가 땅을 보게 되었다. 지인을 통해 땅을 잘 아는 분을 만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추천한 땅을 둘러보고 땅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지도앱, 국토스마트앱으로 땅의 모양, 주변 환경 등을 살펴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예산에 맞는 땅만 보러 다닐 것이 아니라 비싼 땅, 싼 땅 다양한 땅을 보면서 땅을 보는 눈을 기르라고 했는데, 그렇게 땅을 보다 보면 정이 가는 땅이 나타날 거란다. 구체적인 조언도 조언이지만 무언가 든든한 응원을 받은 것 같아 힘이 났다.


집을 지을거라는 소식을 여기저기 알렸더니 아이 친구 엄마를 통해 한 부동산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부동산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겁이 났는데 아는 사람을 통해 첫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지인 소개라 그런지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매물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뭘 하던 행여 속지나 않을까 의심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곤 한다. 지나치게 경계하다 보니 어떤 일을 할 때 과정 과정이 너무 피곤했다. 처음 부동산을 통해 땅을 둘러 본 날은 지인 소개니 편하게 마음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었고, 그랬더니 피로감이 적었다. 마음을 연다는 게 이렇게 다른거구나.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겠지만, 마음을 열어보기도 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직접 부딪치다보니, 지역광고신문을 보다가 발견한 전원주택지 광고를 보고 답사를 갈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부동산개발업체가 한 필지당 80~100평 사이로 나눠 팔고 있는 땅이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외진데다 진입로가 너무 가파랐다. 그렇다고 자연환경이 빼어나지도 않고 가격이 매력적이지도 않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매물을 하나 둘 보다 보니 부지런히 이곳 저곳 다녀서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주워듣는 게 늘어나다 보니 점점 재미도 붙었다. 막막하기만 했는데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을 하나하나 둘러 볼수록 땅 모양과 향이 어떤지, 편의시설이나 아이 학교와의 거리,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의 거리, 수도, 가스 등 인입 여부, 진입도로 상태, 주변이 조용하고 쾌적한 지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점차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선호하는 땅은 자연 속 전원주택지보다는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도시형 택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한적한 자연 환경도 좋지만 주변 도로 등 정비가 잘 되어 있고 편의시설이 가까운 곳이 우리에게 더 잘 맞았다. 땅의 느낌, 마을의 느낌이 우리와 잘 맞는지 안 맞는지도 감이 오기 시작했는데, 어떤 땅은 아늑함이 없고 어떤 땅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건 직접 가서 감각적으로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꽤나 중요했다.


예산에 상관없이 다양한 땅을 보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예산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땅을위주로 보게 되었다. 너무 비싼 땅이나 싼 땅을 보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부동산에서 우리 예산의 2배인 매물이 있는데 2가구를 지어 하나를 전세를 주라고 했을 때도, LH에 다니는 친척이 다가구 주택을 지어 제일 위층에 살라고 권유했을 때도 흘려들었다. 우리의 근로 소득 외에 부가적인 소득과 노후 수익을 위해 좋은 대안이었지만, 작은 부동산 하나도 가져 본 적이 없던 우리는 집의 규모를 키워 세입자를 들인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면 해볼만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이미 집을 지어봤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겠지? 집을 한 번 지어봤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가구 주택도 지어볼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집을 짓기로 결단을 하고도 꽤 오랜 시간 주저하느라 시간을 보냈던 때, 용기 있게 밖으로 다니며 땅 찾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 짓기가 작은 일도 아니고 처음 해보는 일인데 두려움이 드는 건 당연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나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성향 탓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시작 할 때 행동으로 뛰어드는 게 느린 나는 이것 저것 고려하느라고 시간을 지체하기 일쑤다. 이제는 그게 나라는 걸 안다. 아직도 그런 나를 닦달할 때가 많지만, 이제 조금은 천천히 갈 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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