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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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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Sep 29. 2022

왜 마당 있는 집이어야 했나?

새로운 꿈

나는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했고 결혼하기 전 3년 정도 전공 관련 일을 했다. 결혼 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치의학 전문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 수험생활을 했다. 난데없이 치의학 전문 대학원을 준비한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치과의사라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치아가 안 좋아서 치과 병원에 자주 드나들며 아픈 이를 고쳐주는 치과의사 선생님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 꿈을 가졌을 때 좋아하시며 기대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두 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꿈을 더욱 크게 키웠다. 수학과 과학보다 국어를 더 좋아하고 잘 했던 나는 사춘기를 지나며 마음속으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이었다. 읽고 쓰는 것에 늘 흥미가 있었고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글 쓰는 직업이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꿈은 깊이 숨겨두고 말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인정받는 직업이면서 부모님에게도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는 치과의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이과 적성이 부족하고 끈기 있게 파고드는 독기도 부족했던 나는 결국 입시에 실패했다. 점수에 맞는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재수학원에 다니며 치과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했지만 결국 접었다. 결혼하고나서 치의학 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 다시 치과의사의 꿈을 좇아가다가 또 접었다. 세 번에 걸쳐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도전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실패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침내 치과의사라는 낡고 오랜 꿈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포기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깊은 패배의식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오랜 목표가 사라지니 이제는 아무것도 좇을 것이 없어 공허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 즈음 마당있는 집을 짓자는 새로운 꿈이 나타난 것이다.


결혼 전 친정 집 사정이 어려워져 근 10년 동안 셋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나에게, 집이란 가족의 안정과 행복 그 자체였다. 결혼 후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내 집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반대로 여전히 셋집을 전전하면서 내 집에 대한 소망은 하릴없이 홀로 여물어만 갔다. 언제 어떻게 내 집 마련의 꿈이 마당 있는 집으로 그려지게 된 걸까?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두세 살이 되며 활동량이 많아졌을 무렵 낡고 좁은 아파트에 갇혀 아이를 키우며 답답해했던 그 때부터인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내 일기장에는 마당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 놀고, 흙을 밟고, 나무 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고, 가족과 친구를 초대해 고기를 구워먹고, 누워서 하늘을 보고, 바람소리와 냄새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집,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데는 취미가 없었다. 자연 친화적인 성향도 아니어서 동물과 식물을 썩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스팔트를 밟으며 많은 시간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도시 여자였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알기에 왜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하는지 의아해했다. ‘마당 있는 집’하면 정원과 텃밭이 먼저 떠올려지기에, 그 쪽에 크게 관심도 없는 나와 마당 있는 집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마당 있는 집을 꿈꾸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많거나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자연’이라는 키워드는 마당 있는 집의 중요한 요소지만 ‘자유’와 ‘독립’이라는 키워드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단독주택 선택의 이유가 아닌가 한다.


좁은 아파트 10층에서 어린 아이를 키우며 홀로 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던 그 때 나는 공간적인 독립과 시간적인 자유를 꿈꾸었다. 마당 있는 집은 그 모두를 충족해줄 것처럼 보였다. 집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도 마당 덕분에 공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마당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내 육아의 시간을 덜어줄 것 같았다. 육아와 좁은 아파트에 갇힌 내게 자유와 독립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바로 마당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소망은 그저 막연한 꿈으로만 간직할 뿐 감히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단한 육아의 시간에 지친 내게 가끔씩 위로를 주는 상상일 뿐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 갈 때 즈음 땅콩집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땅콩집 건축가가 쓴 ‘두 남자의 집 짓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적은 예산으로도 마당 있는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며 집 짓기 열풍을 일으킨 건축가가 쓴 책이었다. 한 필지에 두 집을 짓는 형태를 듀플렉스라고 하는데 이 건축가는 이것을 우리말로 '땅콩집'이라 명명했다. 땅콩집은 특히 나같이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부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가 건축가이자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사는 사람으로서 밝힌 ‘땅콩집 정신’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돈으로 단독주택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이 들어 근사한 주택에서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었다. 마당 있는 집이 현실성 있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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