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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1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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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May 31. 2021

집을 짓기로 결정하던 때

집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세 2년 계약의 만료일을 반 년 정도 남겨 둔 시점이었다. 집 주인은 집을 팔고 싶다면서 이사 비용을 줄 테니 집이 팔리면 나가줄 수 있는지, 혹은 구입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우리 부부는 집 주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고민 끝에 집주인에게 집을 살 생각은 없으며,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이사 비용을 받고 나갈 생각도 없고 전세계약 만료 때까지 살겠다고 전했다. 


남편은 우리가 결혼 할 때부터 집값 폭락을 얘기하며 집을 사면 손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남편은 집 주인의 집 구매 제안에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남편과 달리 언제나 내 집 마련을 원하긴 했지만, 꿈에 그려왔던 첫 내 집을 이런 식으로 상황에 떠밀려 갑작스럽게 사고 싶지는 않았다.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와도 집이 팔리지 않았고 전세금은 오르는 추세였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려 받지 않을 테니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살면서 대신 집이 팔리면 언제든 나가줄 수 있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크게 손해 볼 것 없다 생각했고, 집 주인의 제안을 기록한 각서에 서명을 해주었다. 막상 ‘각서’라는 문서에 서명을 하려니 뭔지 모를 설움이 느껴졌지만. 


그 시기에 동네에서 아이를 같이 키우며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하나 둘씩 내 집 마련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정착을 생각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평생 전세를 전전하며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아파트는 새 집이라서 깔끔하고, 우리 가족에게 충분히 넓고, 무엇보다 거실 창으로 산이 한 가득 보여서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집이었다. 나는 조용하고 작은 이 동네와 이웃에 점차 정이 들고 있었다. 


세 들어 살던 집이 계속 안 팔리자 우리가 이 집을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내 집'으로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은 훨씬 더 낮은 가격이라면 산다고 했다. 즉 살 의향이 없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생각은 더욱 확고했다. 그러나 남편의 반대가 거셀수록 내 집 마련에 대한 나의 욕구는 커져갔다. 


그 즈음 나는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에 있었다. 내 오랜 꿈이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해 포기해 버린 채 무기력하게 있던 때였으며,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난생 처음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던 때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말더듬 판정을 받고 언어치료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힘들었던 때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그런 때였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 친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며 나는 불쑥 말했다. 

"나는 요새 꿈이 없어."

그 엄마가 물었다. 

"하고 싶은 거, 뭐 그런 것도 없어?" 

그 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아..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던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소망이 나도 모르게 내 입 밖으로 나왔다. 


그 때부터였을까? 결혼 후 오랜 기간 꿈꾸었던 우리만의 집이 마당 있는 집, 단독주택일 거라는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마당 있는 집이 나의 잃어버린 꿈의 자리를 채우고 내 약한 몸도 건강하게 하며 아이의 말더듬도 좋아지게 할거라는,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구원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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