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수입, '대박 달'과 '쪽박 달'

돈 많이 번 달은 '리스크 대비'의 달이었다.

by 세실리아

'프리랜서로 살기'와 같은 제목의 책을 보면 'O개월 간 일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돈'을 일 순위로 꼽곤 한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의 '프리랜서로 먹고 살기'에도 재정관리에 대한 문답이 나온다.

이 날의 게스트 김호(스튜디오 블랙아웃)님은 고정적 수입으로 한 달 생활비를 하고, 그 외 수입은 통장에 모아 재정 리스크에 대비한다고 했다.


이후 진행자가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에 대해 화두를 던지며, 안정적인 프리랜서 생활을 위한 수입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기복 있는 수입'은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기복에서 최저점이 내가 납득할만한 수준이면 장점일 테고, 최저점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 단점일 것이다. 하지만 장점이든 장점이든 '기복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지출관리를 해야 원활한 수입 흐름이 이뤄진다.


프리랜서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2년 이상은 프리랜서 생활을 해봐야 수입 흐름이 보이는 거 같다(또 모르지. 6년째가 되면 5년은 해봐야 보인다고 할지도). 처음 1년은 모든 달을 한 번씩 겪어보긴 했지만 특정 달에 우연히 일이 많이(혹은 적게) 들어온 건지, 아니면 시즌을 타는 건지 가늠이 잘 안된다. 하지만 그다음 1년을 겪으며 성수기와 비수기가 어느 정도 파악되기 때문이다.


2년 차의 어느 달, 메인 업무와 세컨드 업무가 적절히 조화를 이뤘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세컨드 업무가 여러 군데서 굵직하게 들어왔고 세컨드 수입이 메인 수입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난 '프리랜서 맘'이라는 신분으로, 아이 등하원 시키고 밥 챙겨 먹이느라 일하느라 몸이 닳았다.


그 달 말 수입 결산을 해보니 직장 생활하면서 받았던 월급보다 훨씬 컸다. 그게 세 달쯤 이어졌고, 세 달째 수입은 회사 생활할 때 월급과 인센티브를 함께 받았던 달보다 컸다.


갑자기 돈 버는 게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왜 나는 남편보다 훨씬 많이 버는데(그 세 달의 월급을 기준으로), 시간 유동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이 돌보는 일과 각종 집안일에 내가 더 큰 부담을 느껴야 하는지 '프로불편러'의 안테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다음 달부터는 당장 가사도우미를 불러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 댁에 가던 날 불쑥 큰돈을 출금해 의기양양 갔다. 이 정도는 기분 내도 좋을 거 같았다.

근데 막상 드리려고 하니 현실 자각이 됐다. 특별한 날도 아니고 이만큼의 용돈을 드리는 게 내 수준에 맞는 건가. '이번 달 수입이 우연인가, 아니면 쭉 지속될 수입인가'를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그 날 그만큼의 용돈을 드린다고 앞으로도 쭉 드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은 내가 계속 돈을 잘 버는지 알면 곤란할 거 같았다. 반대로 '이번 달 만 잘 번 거'라고 말하기엔 그럼 다음 달부터는 손가락 빨아야 하는 거냐고 걱정하실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너무 일희일비하며, 그 달의 수입에 연연하고 있었다. 평정심을 되찾고, 평소 드렸던 용돈 수준만 봉투에서 빼서 드렸다. 의기양양하게 ATM기에서 나름 큰돈을 뽑았지만 찌질한 결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 달 월급은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사실 세 달 동안 기대 이상의 돈을 벌게 되면서 남편한테 한껏 의기양양했고, 한편으로는 오만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프리랜서로 이렇게 유연하게 시간 활용하며 아이 등하원도 시키고 집안일도 훨씬 많이 하면서 이만큼의 돈을 벌어오니,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음 달 월급이 훅 내려가니 그제야 '프리랜서 수입의 기복'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대박 달' 수입은 앞으로도 내가 쭉 벌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쪽박 달'을 위해 비축해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


많은 프리랜서 선배들이 프리랜서 전환에 앞서 'O개월 간 일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돈'을 준비할 것을 일 순위로 꼽곤 하지만, '예상치 않게 돈을 잘 벌더라도 너무 기뻐하지 말 것'도 그다음 순위쯤에 넣으면 좋겠다. 그걸 기점으로 내 월급이 오른 게 아니라 '우연한 최고점'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걸 계기로 쭉 그 수입을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박달을 몇 번 경험하고 회사생활이 우습게 느껴지던 치기 어린 시간도 있었지만, 쪽박 달을 몇 번 겪고 난 지금은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진행자 제현주 님의 말대로 프리랜서로서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 재정관리의 리스크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날 출연자들처럼 본업만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거나 팟캐스트를 하거나 수업을 진행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면 수입원을 다각화하면서 수입의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본 현금 흐름을 깔아주는 일을 하되 일회성 프로젝트들을 얹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조언했다.



대체로 프리랜서들이 많이 번 달은 고생한 달이다. 보상심리로 '이번 달 고생했으니 좀 쓰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음 달은 '쪽박 달'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무언가를 지르기 좋은 시기는 '대박 달' 보다는 연말에 1년 결산을 한 후, 혹은 그다음 해 5월에 종합소득세를 낸 후가 더 적당한 거 같다. 연간 소득이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면 기분 내도 좋지만, 한 달 한 달을 기준 삼기엔 너무 기복이 크다.


프리랜서를 처음 했을 땐 '회사 다닐 때 월급보다 최소한 OO% 이상은 벌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기준이 바뀌었다. 회사 다닐 때의 월급이 아닌 '연봉' 기준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올 한 해도 '대박 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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