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밖에서 유축하던 날이 떠오르다
대학 동기 한 명이 최근 아기를 낳았다. 단톡방에서 축하하며 수다를 떠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모유수유해보니 우리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며 "그 날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 알겠다"라고 했다.
그 날은 나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출산한 지 백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먼 길을 갔다. 출산 후 첫 외출이었다. 모유수유를 하던 때라 3시간마다 유축해야 하니, 급히 휴대용 유축기를 샀다.
결혼식이 끝나고 대학 동기들을 만나 가로수길 새로 생긴 케이크 가게를 갔는데, 유축 시간이 다가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케이크 가게엔 사람도 너무 많고 화장실도 협소해 유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케이크를 다 먹고 파스타집에 갔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휴대용 유축기를 가방에 넣어 화장실로 갔는데, 자동 유축기만 쓰다가 휴대용 수동 유축기를 쓰니 손목이 나갈 거 같았다. 게다가 그때는 한여름이었는데, 화장실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땀이 뻘뻘 났다. 땀으로 몸이 흠뻑 젖고, 수동 유축기는 뻑뻑해서 잘 움직이지 않아 겨우겨우 유축을 한 후 탈수 직전 상태로 화장실을 나오니 친구들이 놀라서 부채질을 해줬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정말 재밌었는데, 저녁이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집이 멀어서 차가 끊길까 봐 걱정됐던 것도 있지만,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맡기고 나온 거라 신경 쓰였다.
커피도 마시고 저녁도 먹었으니 집에 가려했는데, 친구들이 헤어지기 아쉽다며 카페를 한 군데 더 가자고 했다. 집에 가려던 나는 순간 당황했는데, '맞아.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다른 친구 말에 함께 카페로 향했고, 막차를 타고서야 집에 왔다. 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기진맥진하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했던 기억이 난다.
출산 후 첫 외출이자, 처음으로 밖에서 유축했던 기억이다.
내 친구들은 누구보다 사려 깊고, 배려심 깊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그 날 화장실에서 수동 유축기로 유축하던 내 어려움을 온전히 알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조금 더 놀자고 할 때, '아기 때문에 난 일찍 들어갈게'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았던 거 같다. 기꺼이 이해했을 친구들인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 나는 친구들에게 '아기 때문에 나는 먼저 들어갈게'라는 말을 못했던 것처럼 업무 파트너들에게 '아이 때문에 힘들어요'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 보내려고 퇴사하고 업무 형태를 바꾼 건데도 말이다.
'지금은 아이 하원 시간이라서 제가 조금 있다가 전화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해도 되지만 애 핑계를 대는 거 같아 싫었고, 미팅 시간을 정할 때 그때는 아이 봐야 하는 시간이라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칫 애 핑계 대며 일 대충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무기한 개학 연기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애를 옆에 두고 일해야 하는 날이 생겼고, 미팅 일정을 잡을 때에도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시간에만 잡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유치원에 오랜 기간 보내지 못하는 중이다.
예전의 나는 '그 시간은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불가능해요’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는데, 코로나 이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닥치니 오히려 편히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에 최대한 맞춰 미팅 시간을 잡는 등 배려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업무 전화를 할 때 아이가 시끄럽게 하는 소리가 들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이가 집에 있다는 걸 모두들 인지하고 나니 오히려 편하게 통화하게 됐다. 사실 업무 파트너가 온전히 나를 이해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처럼 과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한다. 대신 맡은 일의 데드라인은 반드시 준수한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막상 애 핑계 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딱히 없다는 거다. (물론 이걸 문제 삼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배려받는 내가 행운일 수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일하랴 애보랴 힘들지만, 또 코로나 덕분에 아이가 옆에 있다는 걸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이러니. 코로나가 바꾼 프리랜서 맘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