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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Mar 04. 2020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그리고 전자책을 구매했다

재작년 초여름, 일 때문에 일주일 내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볼 일이 있었다. 필요한 것만 보고 싶은데 광고를 봐야 하니 유튜브 프리미엄을 가입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 이후 프리미엄 요금이 내 '디폴트 값'이 되었고, 해지하지 않았다. 나는 유튜브를 즐겨보지도 않는데, 2년 가까이 월 8,690원을 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 읽었던 책 <넛지>에서 나왔던 '디폴트 규칙의 힘'이 이런 건가. 기업의 입장에서 기본값을 미리 설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넛지다. 예컨대 잡지 정기구독을 하면 독자들이 웬만하면 해지하지 않기 때문에 첫 달 무료 혜택으로 가입시킨 후 정기 구독을 유지하는 게 대표적인 넛지라고 했다.

(* 넛지: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며칠간 유튜브를 사용하지 않을 땐 ‘본전 생각’에  아까웠다. 본전 생각이 나는 날엔 이런저런 동영상을 '광고 없이' 봤다. 다 보고 나면 추천 영상이 뜨니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다른 영상들을 한참 보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가끔 생각지 못한 주제로 흘러들어 가 '내가 어쩌다 이 영상까지 보고 있지?' 할 때도 있었다.


1950년대 마틴 하이데거는 다가오는 "기술 혁명의 파도는 인간을 꼼짝 못 하게 넋을 빼놓고 눈을 멀게 하고 현혹해 특정한 아이디어가 어느새 유일한 사고방식인 양 받아들여지고 실행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즘 분석이라는 기술 실현을 통해 초개인화가 가능해지면서 하이데거의 예측이 21세기에 와서 실현되고 있다.

초개인화 큐레이션이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성해나갈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사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신이 없을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0> p.311


'기술이 나보다 더 나를 더 잘 알기 시작한 시대'가 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술이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이끄는 대로, 기술이 의도하는 대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책에서도 특히 와 닿았던 건 '사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신이 없을 경우' 이러한 문제가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내 취향에 대해 조금 더 정교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콘텐츠 소비자보다는 생산자가 되자는 게 올해의 내 목표인데, 소비자일 때에도 무작정 끌려가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 소비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전자책을 구입했다. 우연히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선 애독자를 자처하게 된 최다혜 작가님이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에서 <업고 쓰고 잘 때 읽고>라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문 후 책이 인쇄되어 배송되는 형식과 전자책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난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전자책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나에겐 새로운 콘텐츠 소비 형식인 셈이다.


'넛지' 인해 2 가까이 가입되어있던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구매해서 보는 , 그리고 새로운 형태인 전자책이라는 포맷을 처음으로 소비해본 . 이런 일련의 경험이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되어가는 과정 같아 뿌듯했다.

(참고로 유튜브를 즐기는 게 수동적 콘텐츠 소비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원래 영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고, 추천되는 영상 위주로 별생각 없이 클릭하는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한 날 읽어본 책, <업고 쓰고 잘 때 읽고>의 최다혜 작가가 나처럼 '비육아 체질'이라는 점과 '책 좋아하는 엄마'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이의 요구를 하나하나 들어주기보다는 책 읽기에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이 '방임인지 모범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라고 말한 것은 특히 인상 깊었다.


작가님의 브런치, 블로그 글을 모두 챙겨 읽어보는 편이라 이미 대부분 읽어본 내용이었다(구매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서 지겹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새롭게 정리된 버전으로 읽어서 더 좋았다.


언젠가 업무상, 또는 다른 필요에 의해 유튜브 프리미엄을 다시 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유튜브의 로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코리아트렌드 2020>에서도 지적했듯 개인화 큐레이션은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성'해나갈 위험이 있으니 말이다.


기술이 유도하는 대로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취향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판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래 글은 콘텐츠 소비자보다는 생산자가 되자고 생각했던 날 썼던 글. 참고로 이 글에도 최다혜 작가님 글이 등장한다.

https://brunch.co.kr/@ksdy/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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