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수업 중 모둠활동으로 연극이 있었다. 신데렐라 연극을 하는 거였는데 어쩌다 내가 신데렐라 역할을 맡게 됐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고 주인공을 맡을 성격은 더더욱 아닌데, 내가 왜 주인공을 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방과 후 연습 해야 해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오니, 엄마가 쟁반에 간식을 담아 방으로 갖다 주셨다. 애들이 나를 가리키며 "얘가 신데렐라 할 거예요"하자 엄마는 '쟤가 별일이네'하는 표정으로 신기해했던 거 같다.
난 머리숱이 많아서 엄마가 항상 머리를 고무줄로 꽉 묶어주셨다. 근데 연극 연습하던 중 친구 한 명이 "너 신데렐라 하려면 머리 풀고 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하니, 옆에 있던 애들도 "맞아 맞아. 신데렐라는 머리를 길게 풀어야 해" 맞장구를 쳤다.
친구들이 가고 나서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이 신데렐라 하려면 머리를 풀러야 한다는대?"하니 엄마가 "너는 머리숱도 많고 부스스해서 안되는데.." 하더니 갑자기 집 근처 예삐미용실에 날 데리고 갔다.
엄마는 미용실 아주머니한테 "우리 딸 스트레이트 좀 해주세요" 했다. 매직펌을 그땐 스트레이트라고 불렀다. 기다란 판때기에 머리카락을 얹고, 약을 뿌린 후 꼬리빗으로 쭉쭉 빗어 무거운 걸 머리에 붙이고 있다가 한두 시간 있다가 그걸 뗐다. 신기하게 부스스한 머리가 가라앉았다.
그때 엄마가 3만 원인가 냈던 기억이 나는데, 26년 전이니 나름 큰 돈이다. 대단한 학예회도 아니고, 수업 중 모둠활동으로 하는 연극일 뿐인데 "나 머리 풀고 가야 할 거 같아" 하니 바로 미용실에 데려가셨던 게 신기하다. 유별나거나 치마바람 엄마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항상 세심했던 거 같다.
예삐미용실 근처 안 가본 지 오래됐는데 그 골목에 벚꽃이 예쁘게 피었다는 걸 들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엄마한테 그 골목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요즘 코로나 핑계로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데, 아빠가 드라이브 스루 벚꽃 구경을 가자 했다. 엄마는 내가 예삐미용실 근처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곤, 오는 길에 아빠한테 거길 들러달라 했다.
덕분에 예삐미용실 골목을 정말 오랜만에 갔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임시저장해둔 상태였는데, 엄마 덕분에 이 글에 예삐미용실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됐다.
나 열 살 때, 엄마가 처음으로 매직펌을 해줬던 미용실. 20년 이상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머리 푸르고 가야할거 같다는 지나가는 말에 날 미용실에 데려갔던 것처럼, 지나가는 말로 이 골목 궁금하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들르자고 한 엄마.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엄마는 내가 하는 말에 항상 귀 기울여준다.
코로나 때문에 올봄 벚꽃 구경은 생각도 못했는데, 드라이브 스루 벚꽃 구경 가자고 한 아빠 덕분에 답답한 코로나 일상 중 봄을 느꼈다. 오는 길에 예삐 미용실도 보고!
삼십 대 중반 애엄마가 된 지금도 엄마아빠의 세심함을 먹고 산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엄마아빠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툴지만 따뜻했던 엄마아빠>를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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