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기린.
기린이다
압구정 기린 씨.
난 그를 기린 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그를 기린 씨라고
부르기 전이라도 누구나
그를 압구정의 명품관 앞에서
그를 보면 첫눈에 기린이네
라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없었던 기린을
나는 거기 지하 명품관
지하 주차장에서 찾아
아니 발견했다.
입구에 기다랗게
서 있는 그를
기린을
너무 쉽게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키가 커서 눈에 띄는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처럼
그는 강남의 휘황찬란한 빌딩숲
사이에서 금방 눈에
띄어서 숨을 곳도 없이
발견될 수 있었다.
키가 큰 그 강남 기린 씨는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아무도 반가움을 표시하기는커녕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일쑤이다.
연한 갈색의 장난감 병정 옷을
입고 서있는 그는
손을 직각으로 교환하고
또 90도로 그 긴 목과 허리를 숙이며
교차하여 지구인에게
강남인에게 인사를 한다.
물론 지구인은 대꾸를 거의 안 한다.
벤츠, 아우디, 벤틀리, BMW가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
아무도 그의 인사에
반응하지 대꾸하지 않는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반갑습니다".
그러나 강남 명품관 기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모자를
고쳐 쓰고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다음 손님,
아니 다음 고급차를 기다리면서
마냥 거기에 서서 서식하고 있다.
뜨거운 한낮의 숨 막히는 더위에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들이
한바탕 몰려들고 먼지가 일고
잠시 짬이 나자
그는 긴장이 조금 풀려서 조금
비스듬히 서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시 평온한 기린처럼
입을 씰룩이며 큰 눈을 꿈뻑이며
아까 먹은 풀을 되세 김질 하듯이
아까 먹은 빵과 우유 혹은 삼각김밥을
되새김질하듯
맞잡은 두 손으로 잠시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수고했다.
다행이다.
괜찮았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스스로의
위무 같다.
그는
명품관 앞 주차장의 기린이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원의 기린처럼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지구의 강남의 사자들에게 어서 오십시오하고
인사를 하고 미소를 띠며
명품관의 주차장
기린 도우미로 살아가고 있다.
두르릉 콰르릉
마침 반가운 끝물 장맛비가
천둥소리와 마른번개가 거기에 내려쳤다.
그는 커다란 바오바브나무 그러니까
작은 주차안내 박스에 슬며시
기듯이 들어가 대기했다.
참 다행이다.
그가 잠시나마 사자들을 피해
그 숲 속에서 자리에
앉아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
뜨거운 태양아래 볼 수 없었던
하늘, 비록 비 오는 하늘이지만
그 하늘을 멀리 바라보면서
자신의 안식처를 그리며
잠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그의 손에는
얼음이 꽉 찬
편의점표 커피가 들려있다.
기린이 마시는
진한 쓰지만 달콤함 커피
나의 목도 덩달아
차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