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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15화

추격자

by 황규석

캄한 늦겨울 초봄 밤이다. 3월이지만 변두리라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차다. 앙상한 은행나무 고목이 터줏대감처럼 서있는 버스 정류장. 빨간 버스 한 대가 흰 마스크를 여자를 떨구고 출발했다. 여자가 작은 길을 건너가자마자 출발했던 버스가 끼익 급정거를 했다.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마른 남자. 천천히 집으로 걷던 긴 생머리의 여자가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까 늦게 버스에서 내린 남자가 천천히 그녀를 뒤따라왔다. 또각또각 그녀는 모스 부호라도 내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걸어서 나아갔다. 이면도로 안은 가로등도 밝았지만 용인으로 가는 국도 아래 토끼굴은 고장 난 가로등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아 깜박이는 상태였다. 그 토끼굴을 지나면 작은 편의점이 불을 켜고 있어서 환했었다. 그러나 요즘 밤에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고 있어 어둠이 넓게 깔려 있다.


"아빠! 누가 나 따라오는 것 같아..." "뭐라고?... 괜찮니?" "집 앞에 나와 있어!" "하 하연아! 하연아!" 여자는 급하기 말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보는 척 뒤를 돌아보니 그 검은 마스크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낀 채 앞만 바라보고 곧장 따라오고 있었다. 여자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크게 말했다. "어, 아빠, 다 왔어! 나와 있지? 응 저기 보이네!" 하연이 수화기에 대고 급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20미터 정도의 토끼굴이 보였다. 위에는 여주로 나가는 국도다. 그날따라 가로등이 고장났는지 더 어두웠다. 지난 일요일 오후 쉬는 날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었다. 밤과는 달리 빛이 들어와서 무섭지 않았다. 일부러 운동 삼아 거길 뛰어 통과해 보긴 했었다. 열심히 뛰었지만 10초는 무리였다. 1년을 놀다가 다시 취직을 한 하연은 자신의 몸에 살이 붙었음을 실감했다. 다시 하연은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번에 살기 위해서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연의 하얀 마스크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가 손을 댄 것 같았다. 뒤에서도 운동화가 달려오는 소리가 저승사자의 마차바퀴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이렇게 괴한에게 잡히는 걸까?...


마나 그 짧은 추격과 도망의 순간이 길게 느껴졌던가. 저기 토끼굴 끝에 핸드폰 불빛이 보였다. 아빠가 나왔다. 다 왔어! 살았다. 따가닥 따가닥 파발마 같은 하연의 구둣발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탁!!” 작고 날씬한 음료수 병이 하나 구두 뒷굽에 걸렸다. 걸려 넘어지면서도 그 텅 빈 비타민 음료수병이 보였다. '씨에로 화이봐 이런 된장!' 누가 이걸 아.. 이제 죽는구나. 뒤에서 그 남자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저기요.." 그놈 목소리다. 목소리는 좋았다. 검은 마스크.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살려 주세요~~" "이거... “ ”네? “ 하연은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빌었다. ”마스크 버스에 놓고 가셔서요....." "아...!" 남자는 수줍은 듯 하연에게 그 봉지를 열심히 빌던 손에 걸어주고 왔던 길로 토끼굴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아빠가 다가왔다. "하연아, 아빠다! 괜찮아" 검은 마스크가 쥐어준 검은 봉지 안에는 KF94 마스크 10장이 그대로 있었다. "저기요..." 하연이 미안함과 무안함에 남자가 사라진 쪽에 대고 불렀다.


은 마스크를 쓴 남자는 이내 잽싸게 자리를 뜨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얘는, 마스크도 안 쓰고 뭐 해. 얜 항상 촐랑대서 탈이야... 자주 넘어지고..." 하연은 저 멀리 마스크 맨 아니 정확히는 검은 봉지맨이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애초에 놓고 내린 것이 있다고 말을 하면 좋았을걸... 여하튼 하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십년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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