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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12화

1번 국도, 고슴도치

by 황규석

1번 국도, 고슴도치


의 잔상이 내 망막에 나타난 지도 5년 정도.

나는 주유소를 갔다가 올 때마다 그를 보곤 했다.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주유소는

읍내에서도 거리가 좀 멀었다.

그는 인도로 걸었지만 큰 트럭이 많이 지나가는 1번 국도의

커다란 트럭들이 지나가면 먼지가 풀풀 나는 먼지 폭풍 속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희미하게 나타나곤 했다.


를 기억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주유소를 가는 오전 12시 전후로

도로가에서 마주치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 지나서 빛바랜 아이보리 체크무늬 정장 상의에 갈색의 오래된 정장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입지 않는 오래된 옷은 우리의 아버지 때 입었던 스타일의

오래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듯한 옷들이었다.

지난 한겨울 칼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오늘 같은 한여름 땡볕아래서도 늘 똑같은 복장을 하고 국도변에서

매일 점심시간 전후로

길을 걸어가는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딱 봐도 한눈에 좀 정상이 아닌 사람인 듯했다.


는 비록 오래된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도 언제나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는 목에서 좀 느슨하게 메고 있을망정

내가 볼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넥타이 색깔도 분홍색으로 나름대로 멋을 내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비록 주름도 잡히지 않고 후질 그래 한 오래된 양복을 입고

열심히 1번 국도 큰길을 열심히 걷는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의 듬성듬성한 까까머리는 흡사 고슴도치 같았다.

흰머리가 뒤덮인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50대 초반이거나

나보다 많아야 2~3살이나 많을까 싶었다. 주름이 많은 얼굴에는 상처도 많았다.

흰머리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많이 늘은 거 같았다.


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겁이 나서 그냥 차를 빨리 몰아나가곤 하였다.

그러다 내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신호에 걸렸고 마침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눈인사를 던진 것이다. 그도 그 자신이 모르게 옅은 눈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나 눈이 마주치면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해를 끼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아예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를 가까이서 훑어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쓴 검은 구두의 바깥쪽이 많이 달은 것으로 보면

내성적인 B 형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나도 B형이었다.

걷기도 좋아하고 철 지난 옷도 거리낌 없이 아무렇게나 입는 나와 비슷해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사실 걷는다고 말하기가 좀 어려웠다. 손목은 좀 틀어져있었고

다리 한쪽도 불편한 듯 걷는 자세가 불안했다.

옆에서 같이 걸어본 적이 없었지만 삐걱 삐거덕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손으로 노를 젓듯 나아갔고 길바닥을 걸레를 닦듯이 쓸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렇게 그와 일주일에 3, 4번을 1번 국도상에서 마주쳤다.

그의 독특한 외양과 그 걸음걸이에 어느 정도 궁금증이 더해만 갔다.

게다가 그는 잠시 서있을 때.

양복인 조끼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곤 했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 시계를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출근길에 있는지도 몰랐다.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메일 1번 국도를 걷는 일은

신성한 의식이나 출근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다.

또 그 틀어진 손목에는 언제나 꺼먹 비닐봉지가 단단히 묶여있었다.

그러니까 꺼멍 봉지를 묶고 국도변을 오래된 양복을 입고 점심시간 전후로

어디론가 열심히 꾸역꾸역 삐걱삐걱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서울로 출근을 해도 그는 그 길 위 있을 거라 확신이 들었다.

언제나 그 시간에..


가 가끔 길에서 멀어질 때는 땅을 파고 사라지는 듯했다.

거북이가 바다를 헤엄치듯 앞으로 나아갔다. 느리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듯 말이다.

유난히 무더운 월요일, 오늘 다시 그를 보았다.

아니 발견했다.

우체국에 갔다가 자물쇠 하나를 사달라는 부탁을 받고 골목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었다.

골목 끝자락에서 그가 발을 끄는 소리를 들었다. 봉지 흔들리는 소리도 들었다.

괜히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노 젓는 발소리를 조심스레 따라갔다.

작은 언덕이 나왔다.

낡은 집 페인트가 다 벗겨진 단층 양옥집.

철제문도 담에 기대에 있는 집.

손잡이에 해지고 때에 절은 실타래 풀린 타월이 걸린 낡은 유모차가 마루에 보였다.


판이 뜯겨나간 마루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그 남자 고슴도치를 닮은 남자가 삐걱 거리며 다가가자 몸을 일으켰다.

아마 그가 올 줄 알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엄니... "

"왔냐..."

"야... 이거 옥수수"

"덮지?.."

"아니유.."


여름은 좀 덜 더웠으면 이번 주에는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나는 하늘을 하얀 구름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회색구름 한무디기가 저 먼산을 느릿느릿 넘어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비린 바람내음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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