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심장으로 하고 일은 밥심으로 하는 것이 을이다
오랜만에 동묘 중고시장 골목 안쪽의 '시골순대국밥집'에 갔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을은 제때에 밥을 먹기가 힘들다. 갑의 눈치를 봐야 하고 언제 또 갑의 호출이 있을지 모르기에. 늘 거기에 가면 순대국밥을 먹는다. 7천 원짜리 순대국밥이 뚝배기에 끓고 있는 동안 반찬을 스스로 가져왔다. 편육 3점이 올려져 있다. 침이 고인다. 7~ 8년 전 4500원 했던 가격이 2500원이 올랐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하다. 펄펄 끓은 뚝배기에 내장과 머리고기 찹쌀 순대가 들어있다. 난 이게 그렇게 좋다. 국물도 먹고 서비스 고기도 있고 김치도 있고 깍두기도 있고 양파 장아찌도 있다. 반찬이 모자라면 더 덜어서 먹을 수 있다.
너무 착한 가격의 순대국밥. 식당은 작고 허름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노포집이 좋다. 입담이 좋은 사장임은 머리고기를 썰고 있고 중국에서 온 주방 키 큰 아주머니는 뚝딱 국밥을 내온다. 군대에서 하도 찬 밥과 국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는 무조건 뜨거운 국물이 좋다. 속이 데일 정도의 국물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입천장도 자주 데고 위에는 안 좋다는데 어쩔 수가 없다. 혹한기 훈련을 나가서 겨울비가 내리는 강원도 화천 숙영지에서 식은 된장국(똥국)에 차디찬 짬밥을 많이 말아먹어봐서 그런가 보다.
보글보글 끓는 순댓국에 공깃밥을 말아 넣고 고기와 내장을 먼저 건저 새우젓갈에 찍어 먹는다. 새벽부토 을로서 가슴 졸이고 긴장하며 움츠렸던 가슴이 펴진다. 국밥이 뱃속에 채워지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매일 먹으면 좀 질리겠지만 뭐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밥충이라고 해도 좋다. 나에겐 몇 십만 원 어느 호텔 뷔페나 비싼 스테이크보다 더 풍족감을 주는 이 뜨끈한 국밥이 좋다. 먹으면 힘이 난다.
벽면에는 이 식당에 대한 이야기와 방문객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무슨 동문회 기수, 동호화 모임, 커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기에 왔다 갔다는 이야기다. 잘 먹고 간다는 이야기부터 언제 어디서 왔다 가는데 다시 또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중에 난 늘 이 낙서 아니 방명록을 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란 검은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글.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아마 소주 한잔의 힘을 빌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볼 때마다 그냥 나도 반성하게 만든다. 태어났을 때부터 을로 살아왔고 상경 후 20년 넘게 을도 살아왔다. 결코 나는 심장으로 사랑하지 못했다. 을이 가진 한계 때문에 조건을 따져왔던 것이다. 조건과 환경을 털어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당당하지 못했다. 반성한다. 어쨌든 한 달에 한두 번은 와서 밥심을 충전하고 간다. 반환점을 이미 지난 남은 인생 이제라도 심장으로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밥심으로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이지 않은가. 밥심과 심장이면 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