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 헌혈

2014 대한적십자사 헌혈공모전 스토리텔링부분 대상 수상작

by 황규석

“여보, 거기서 만나요” “알았어요..”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암호처럼 데이트 장소를 서로 알고 있다. 지금은 넓고 쾌적한 헌혈의 집이지만 헌혈을 시작했던 25년이 훌쩍 지난 그때는 지하상가 구석의 좀 어둡고 한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긴급하게 수술용 피가 모자란다는 자막을 보고 헌혈을 알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찾아온 헌혈버스를 통해 처음 헌혈을 시작했다.


지금은 모아진 헌혈증을 기증하기 위해서 또 정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정기적인 헌혈이 시작한 지 내년이면 30년째다. 쉬는 날이 적고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은 일을 하며 내가 헌혈을 위해 매번 2시간 이상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시간을 만들어야 하고 꼭 헌혈을 해야 개운하게 생각이 된다. 처음엔 아내도 헌혈을 이해하지 못해서 싸운 적도 사실 많았다. 하지만 꾸준한 나의 활동에 설득에 동의를 해주고 지금은 이해하고 응원을 해줘서 너무 고맙다.


헌혈데이트 약속 후 아내는 먼저 와서 날 기다리기도 하고 내가 성분헌혈을 한참 하고 있을 때 다가와 손을 흔들고 책을 보고 기다리곤 한다. 한 달에 두 번 모두 아내와 헌혈의 집에서 만나지 못해도 우리는 내가 헌혈하는 날은 모처럼 외식을 하거나 쇼핑을 하는 헌혈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헌혈을 하지 못해도 가끔 시간이 남으면 잠시 들러 휴식도 취하는 마음 편한 휴게소다. 소아암재단이나 백혈병어린이재단 등에 지금까지 해온 헌혈증 350장을 모두 기부를 하였고 이제 모여진 50여 장의 헌혈증도 곧 필요한 곳에 좋은 곳을 찾아 기증을 하려고 한다.


대만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다 시집온 공인 7단의 아내는 내가 받은 기념품을 전지 훈련하러 온 대만의 태권도선수나 코치에게 선물하길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헌혈도 홍보해 준다. 사실 아내도 같이 헌혈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헌혈을 처음 한 후 헌혈 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못하고 있는 게 그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첫 헌혈하는 모습을 즉석카메라로 찍고 선물 받은 사진은 우리 가정의 멋진 기념품으로 잘 보관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헌혈의 집은 편안한 건강 검진소이며 약속장소이다. 또 내가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익숙한 장소다. 거기에선 학생 자원봉사자들의 수줍고도 활달한 모습도 볼 수 있을뿐더러 가족같이 너무나 친절한 헌혈센터 간호사 선생님들과 안부도 주고받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포근한 보금자리다.


나는 또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헌혈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간접 체험도 한다. 앳된 초보 간호사부터 흰머리의 할아버지. '까르르' 환하게 웃는 예쁜 교복 입은 여학생과 변성기로 굵은 목소리를 내는 남학생들이 같이 들어와서 시끌벅적 대는 모습도 반갑다. 첫 헌혈을 하는 사람이 바늘이 들어갈 때 눈을 찡그리는 모습도 정겹다. 바쁜 일상 속 시간을 내서 온 젊은 헌혈자가 헌혈문진 후 혈액 비중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헌혈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때는 나 역시도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께 고맙다. 또 꾸준히 생명과 사랑 나눔에 실천하는 나 스스로에게도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평소에 건강을 유지하고 앞으로 오랫동안 헌혈을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아울로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헌혈이지만 난 항상 처음 헌혈 할 때의 그 순수했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헌혈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헌혈해서 얻은 자긍심과 보람이 내가 준 혈액의 양보다 몇 배 크기 때문이다. 벌써 나이 마흔 넘어 결혼하여 얻은 사랑하는 아내가 제일 소중한 중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까까머리 고1 때 시작한 헌혈은 아내보다 더 먼저 사귄 내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이자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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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에 한번씩 헌혈이 가능한 혈장 헌혈기 두 대 - 노란색이 혈장 성분으로 알부민을 만드는 제재로 사용된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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