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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Apr 08. 2019

소중한 인연(因緣)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을 생각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각나곤 한다.

동병상련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병자(病者)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이다.

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同情)하고 서로 돕는다 말이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쓰는 표현일 거다.

어제 정말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마음 둘 때 없을 때 관련 카페를 기울였었다.

천형(天刑)을 받은 부모들의 절규였다.

그런 분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부모가 고통 속에서 연명(延命)하고 있었다.

같은 시련을 갖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서로를 위로해주고 다독거리는 모습에 위안이 되었다.

솔직히 친인척이나 이웃사촌보다 먼저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래서 나만의 고통과 서글픈 감정을 웹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토닥토닥해줬다.

자식을 먼저 보낸 죄가 이리 클 줄을 몰랐다.

지난 수년 전 부모님 모두를 여의고 낙심에 빠져 그동안 불효했던 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갔다.

그런데 참척(慘慽)의 고통을 당하고 보니 부모상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나를 낳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고르며 성장시켜준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으니 말이다.

참 이기적인 마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해보니 그렇다.

아들을 그리는 그런 마음을 블로그에 끄적였다.

그런데 같은 시련을 겪은 분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중 한 분을 어제 만났다.

먼저 초청해주셔서 고마웠다.

그런데 그 내외분은 군에 보낸 아들이 군함에서 실종되었다고 하니 나보다 더한 슬픔을 지니고 계셨다.

아직 매듭짓지 못한 시간과 인고의 고통이 현재 진행형이었다.

두 부부가 진해 모처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눈물부터 글썽였다.

순간 서로 얘기를 잊지 못하고 적막감이 방안에 흘렀다.

하지만 이내 구면인양 서로 두 손을 맞잡고 위로하기에 바빴다.

음식을 앞에 두고 한동안 구슬픈 얘기만 오갔다.

서로의 애절함을 가슴속 깊이 되뇌었다.

참척(慘慽)의 고통은 극복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며 나와 똑같은 아들의 아버지는 절규했다.

가슴에 구구절절이 와 닿는 말씀이었다.

아들을 잃고 어떻게 지내왔으며 나름대로 이겨내는 지혜들을 나누면서 두 부부는 서로 친밀감이 더해졌다.

얘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서 울기도 하고 두 손 잡으며 서로 위로하기도 했다.

식당에서 카페까지 이어지는 두 부부의 대화는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다.

진해에서 만난 아들을 먼저 보낸 어느 부부의 환대에 우리 부부는 몸둘 바를 몰랐다.

정말 고맙고 친절하신 부부였다.

비슷한 연배여서 더욱 친근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 덕분에 정말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다음에 또 만남을 기약하고 두 부부는 가로등에 흔들리는 벚꽃을 등에 지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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