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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Jan 04. 2019

제주올레 완주 13일째 12코스 무릉~용수 포구

만남 이야기

<또다시 만난 바다>


  하루 만에 바다를 다시 만났다. 일단 반갑다. 제주도 사람들의 표현대로 '육지것'이라 바다를 이렇게 많이 보긴 평생 처음이다.

"안녕 바다야~ 잘 있언?"

  차귀도와 와도 앞바다의 에메랄드빛 바다에 녹아내렸다. 남태평양 여느 섬이 부럽지 않다. 수월봉과 당산봉 정상 멀리서도 바닥이 훤히 보인다. 포구 앞엔 오죽하랴~ 마치 유리를 보는 것 같다. 바다 밑에 한치의 숨김도 없이 적나라하게 비친다. 거짓이 없다. 요즘 위정자들이 좀 보고 갔으면 좋겠다.




<올레에서 또 만난 인연>


  차귀도 포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쉬고 있는데 누군가 고개를 내밀며 아는 체를 한다.

  "옷 때문에 뒷모습 보고 긴가민가했어요" 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제 모슬봉 오를 때 만난 인연이다. 서울 사는 초로의 두 여성 친구들로 며칠간 올레를 걷는다. 어디서부터 걸었느냐? 어디에서 왔느냐? 며칠간 걷느냐?  등 기본적인 얘기와 함께 펜이가 입은 갈옷이 어울린다며 자기들도 사야겠다고 했다.

  펜이의 한 달간 종주 계획에 부러워하며 자기들은 걸음이 워낙 느리니 먼저 가시라고 한다. 하지만 내심 함께 얘기하며 걷고 싶었으나 발걸음이 완전 거북이과다. 그래서 "걷다 보면 어디선가 또 만나겠지요" 하며 헤어졌는데 어제 점심때도 길거리에서 만났었다. 오늘은 11코스 신평올레 식당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 먹고 나오는데 그들도 식당을 찾고 있었다. 세 번째 만남이다. 그들은 내일 13코스 중간만 걷고 서울을 가기 위해 제주시로 넘어간다는 얘길 듣고 헤어졌다. 펜이도 내일 13코스를 걷는데...




<해녀와 세 번째 만남>


물질하는 해녀와 스로쿨링하는 젊은이

  오늘 해녀분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봤다. 벌써 세 번째다. 맨 처음은 우도였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해녀분이 손을 흔들어줘서 얼떨결에 펜이도 두 손을 흔들었다. 그 때문에 손 흔드는 해녀를 찍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남은 가파도였다. 해녀 특유의 휘파람 숨비소리를 들으며 사진만 찍고 자리를 떴다. 2시간의 배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쉬웠었다. 해녀분과의 인터뷰를 벼르고 별렀다.

  드디어 오늘 수월봉을 내려와 한적하게 걷는데 파란 바다 위에 테왁을 단 주홍빛 공 네댓 개가 둥둥 떠 있다. 해녀의 물질이다. 바로 돌과 바위를 넘나들면서 최대한 해녀 가까이 갔다. 펜이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물질뿐이다. 사진 찍다 동영상 찍다 제풀에 죽어 폰카를 내려놓는다.




톳(좌)과 거북손, 홍합(우)

  하릴없는 펜이는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갇힌 바닷물을 본다. 생명체가 눈에 띈다. 바위 위에 붙은 톳, 홍합, 보말, 이름 모를 조개 그리고 아기 소라... 고동집을 뒤집어쓰고 자기도 고동입네 하며 움직이는 집게도 보인다. 펜이와 한 씨름하다 결국 물속에 놔준다. 펜이가 이렇게 놀 때 해녀분이 아주 가까이 왔길래 묻었다.

  "많이 잡으셨어요?"

한 해녀분은 아니라 하고 또 다른 분은 예라고 한다. 혹시 방금 채취한 소라, 전복, 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을 사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언제 밖으로 나오느냐고 물으니 오후 3~4시에 나오신단다. 시계를 보니 1시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말 몇 마디 부쳐보고 백기 들고 올레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코스가 반 이상 남았으니 언젠가는 해녀가 직접 수확한 해산물을 현장에서 먹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일부러라도 그 시간대를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해녀분의 손수레를 보며 해녀가 갓 잡은 해산물 시식 장면을 그리며 입맛을 다시며 올레로 접어들었다.




<카페에서 만난 인연>


  12코스를 마치고 모슬포 숙소에 들어가기 전 갈증이 나서 '글라글라하와이'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숙소 바로 옆이다. '글라'는 '가자'라는 제주어다. 영어로 쓰인 맥주 이름을 몰라 쥔장한테 추천을 받았다. 수제 맥주로 잘 나가는 것을 부탁하니 Paleale를 한 잔 가져다준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니 뒤끝에 마늘 향이 은은하다. 혀끝으로 맛을 음미하며 손가락은 블로그에 올릴 사진 정리와 영상을 편집한다. 두 번째 흑맥주를 시키고 블로그를 쓰는데 옆 테이블 두 남자 손님이 올레를 걷느냐며 말을 붙인다. 본인은 올레 전체 코스가 생기기 전인 2011년 6월에 42일간 돌았다며 모기에 물린 얘기 등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펜이 보다 수하이지만 올레의 대선배님이다.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온 사투리에 일행 중 한 명이 광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자기도 보성이 고향이란다. '보성'하니 함께 걷다 귀가한 형님이 생각난다. 그 형님도 보성이었기 때문이다.

  올레 예찬과 장기간 시간 낼 수 있음에 부러운 눈치와 펜이의 블로그 여행기를 소개해줬다. 여행하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여행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대화에 서로 공감하며 또한 정보도 얻는다. 이게 바로 소통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태양도 힘내라며 그림자를 길게 늘어줍니다. 연속되는 콘크리트길과 아스팔트가 나와 다소 지루합니다. 하지만 양옆으로 펼쳐지는 너른 초록 들판이 눈을 싱그럽게 합니다. 들판 사이로 신도 연못이 나타납니다. 물 없는 연못에 실망합니다. 초록 들판이 한없이 펼쳐집니다. 펜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입니다.




녹남봉 정상과 분화구
산경도예

  녹남봉(100.2m)에 오릅니다. 오름은 그리 높지 않으나 계단 때문에 숨이 가빠 옵니다. 초입부터 하산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예전에 녹나무가 많아서 녹담봉이라고 합니다. 정상에는 원형 분화구도 있습니다. 녹남봉을 내려오다 삼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감귤과 감나무밭을 지나면 중간 스탬프 찍는 '산경도예'입니다. 폐교를 재활용한 것 같습니다. 어느 학교에나 다 있었던 이순신 동상도 보입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한 이승복 동상은 없네요. 대신 세종대왕상이 있습니다.




사철채송화(좌)와 가자니아 꽃(우)
제주 농촌의 들녘
제비야~ 반갑다~

  12코스에도 봄꽃이 만발합니다. 하늘을 보니 제비가 날아다닙니다. 참 오랜만에 봅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지요. "지지배배~ 지지배배~" 끝도 없이 노래합니다. 얼마 만에 보고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에 올레객을 위한 주민 숙박지 '올레길 할망 숙소'가 나타납니다. 이런 숙소 체험도 하고 싶네요. 신도 고인옥 할망네 (010-7382-8890) 민박입니다. 제주의 농촌은 바쁩니다. 부부 농민이 농약치고 경운기에 나란히 앉아 가는 모습이 다정해 보입니다.




경관이 예쁜 집과 도구리알

  엉알 해안이 나오기 전 예쁜 집도 보입니다. 카페나 펜션일까요? 해안을 따라가니 '도구리알'이 나옵니다. 도구리는 용암이 만든 크고 작은 것으로 나무나 돌로 만든 돼지 먹이통인 함지박의 제주어입니다. 멋진 풍경입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차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인도가 도로보다 두 계단 높아 안전성을 추구한 것 같습니다.




고산 기상대

  다시금 제주의 들판이 나타납니다. 푸르름이 너무 좋습니다. 넓은 들판의 초록 물감을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푸른 들판과 예쁜 집을 보면서 산을 오릅니다. 산 정상에 인조 구조물이 나타납니다. 어제 본 모슬봉처럼. 수월봉 정상(78m)입니다. 가서 보니 군사시설은 아니고 '고산 기상대'입니다. 수월봉은 14,000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만든 고리 모양의 화산체입니다.




  고산 기상대에서 자연스레 바다를 조망합니다. 차귀도가 보입니다. 차귀도 우측에 와도도 보입니다. 걸으면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차귀도, 와도 순으로 보이다 어느 순간 겹쳐 보이다 와도, 차귀도 순으로 역전됩니다. 한편의 파노라마입니다. 차귀도는 제주도 부속 무인도 중 가장 큰 섬입니다. 1977년 영화 '이어도'가 촬영된 곳입니다. 전설의 섬 이어도를 배경으로 인간의 생존 본능과 환경 문제를 다룬 영화이지요.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 대표 영화였다고 하네요.




갈증 해소에 최고! 내 어찌 너를 잊으랴~

  목이 타서 수월봉 푸드트럭에서 아이스 복분자 우유를 사 먹습니다. 산에 오른 갈증을 말끔히 해소해줍니다. 가격은 오천 발! 목을 축이며 마을을 내려오는데 처음 보는 포스터가 보입니다. 요즘 대선 시즌이지요. 이렇게 많은 후보가 등록했나 봅니다. 뉴스에서 벽보가 10m가 넘는다고 했는데 길긴 기네요. 이번에는 제대로 뽑아야겠습니다. 아마 제주도에서 투표하게 될 것 같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힘든 5년이 될 것 같네요.




전복 성게탕

  차귀도 포구에서 점심으로 전복 성게탕을 먹습니다. 미역국에 성게알과 전복 작은 것 3개가 들었습니다. 담백하니 좋습니다. 가격은 만 삼천 발이나 쥔장이 손님 대하는 마인드가 좀 필요해 보이는 식당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용수 포구입니다. 이곳은 한국 최초 신부 김대건(1822~1846)이 1845. 9. 28. 배가 반파되어 표착한 곳입니다. 상하이에서 서품을 받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국법을 어겼다 하여 효수형에 처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1984년 성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카페에서 바라본 모슬포의 멋진 일몰

  오늘 걸은 결과입니다. 어제 걸은 17.1km와 비슷한 결과입니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6시간 50분, 버스에서 내려 걸은 지 5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숙소 옆 '글라글라하와이' 카페에서 목을 축이는데 모슬포의 일몰이 환상적입니다. 모슬포에서 4일 연박 마지막 날 일몰을 보게 돼서 다행입니다.


<오늘의 경제활동>

모슬포~평지동 버스비 1,300

차귀도포구 동환식당 전복성게탕 13,000

고산기상대 복분자아이스 5,000

숙소 옆 글라글라하와이 수제맥주 14,000

대정해수사우나 5,000

저녁 신국수이야기 순두부찌개 7,000

레몬트리 게스트하우스 20,000

계 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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