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펜이 Jan 12. 2019

제주올레 완주 28일째7-1코스(월드컵경기장~올레쉼터)

마지막 점을 찍다~(15km)

  올레를 걸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된 28일째입니다. 오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7-1코스입니다. 간밤 숙소는 제주올레사무국에서 운영하는 서귀포에 있는 올레여행자센터 도미토리입니다. 지난번 6코스와 7코스 돌 때 연박했던 곳이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맨이 벌써 알아봅니다.

  "아직 계속 도시는 거예요?"

당시 숙박도 숙박이지만 기부한다 생각하고 수제 간세 인형과 철재 간세를 사서 지금까지 배낭에 메고 다닙니다.




영광의 상처

  어제 4코스의 후유증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카운터와 카페 관계자에게 묻습니다. 역시나 펜이가 올레 걸으며 이틀 만에 생긴 발가락 물집 해결 방법과 똑같습니다. 바늘이 없으니 이쑤시개로 물집을 터뜨려 화장지로 물기를 닦아내고 휴지로 싸매 일찍 푹 잤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침 식사 후 막 걸으려는데 이젠 엄지발가락이 시큰거립니다. 역시 화장지로 싸매고 양말을 신고 출발합니다. 괜찮습니다.




제주월드컵경기장과 출발점 간세

  버스로 제주월드컵경기장까지 움직입니다. 제주 오름과 화구를 모티브로 한 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이 독특합니다. 이어서 동네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감귤 과수원이 매력적입니다. 과원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귤꽃 향기가 워낙 강해 꽃 가까이에서 킁킁거리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폐부 깊숙이 들어옵니다. 기분까지 상쾌해집니다. 이 향기를 자판에 실어 모든 분께 나눠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ㅎㅎ




향기 진한 감귤 꽃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흔히 만나는 게 돈나무와 귤나무입니다. 다른 지역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거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서귀포는 아무래도 남쪽이다 보니 먼저 꽃향기가 터진 것 같습니다. 올레꾼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반가운 향수 선물입니다. 돈 안 주고 산 셈입니다. 올레를 걷는 사람을 펜이는 '올레객'이라고 표현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올레꾼'으로 정식으로 올라와 있네요.




비 올 때의 엉또 폭포, 비가 오지 않으면 삭막하다.

  '엉'은 큰 웅덩이, '또'는 입구라는 뜻의 제주어입니다. 엉또 폭포 주변은 난대성 식물이 밀림처럼 우거져 새들의 요란한 합창 소리에 휘파람이 절로 나옵니다. 엉또 폭포는 비 올 때만 흐른다는데 오늘은 고요합니다. 비가 오면 50m 공중에서 떨어지는 위용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다시 제주를 찾아 할 이유입니다. 그 옆으로 키스 동굴도 있는데 조금 전에 젊은 연인이 가는 걸 보고 그냥 통과합니다. 또 제주를 마눌님과 함께 찾아야 할 이유입니다.




고근산 올레

  귤 과원과 삼나무 그리고 난대림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고근산(396m) 정상에 이릅니다. 고근산 가는 길은 솔잎과 잣나무잎이 깔린 흙길이 마치 양탄자를 밟는 느낌입니다. 신발 밑창에서 전해져오는 푹신푹신한 감촉에 행복감마저 듭니다. 올레를 걸으며 산방산(395m)이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 줄 알았는데 이젠 3위로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올레 10코스에서 만나는 산방산은 사방 어디에서 관망하더라도 우뚝 서 있었거든요.




고근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머리를 풀어 헤치고 누워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고근산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정말 멋집니다. 요즘 중국발 미세먼지가 많아 제대로 볼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주에 와서 두 번째 허락된 선문대 할망의 배려입니다. 제주 창조 신화 거인 선문대 할망의 규모가 워낙 커서 설화 자체가 신비롭습니다. 선문대 할망이 한라산 정상을 베개 삼고 고근산 굼부리에 궁둥이를 얹어 앞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는 전설입니다. 거인 '선문대 할망'을 검색하면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있으니 꼭 찾아보고 제주를 여행하면 더 유익할 거로 생각합니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잖아요~

  펜이도 작년부터 올레 완주를 꿈꾸고 올레 기행문이나 제주 관련 책 16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주 4.3 사건도 알게 됐구요. 책 리뷰는 '책 이야기' 카테고리(http://blog.naver.com/ksgil39)에 있습니다. 남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누워있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라는데 볼수록 그 말이 맞습니다. 선문대 할망의 설화에서 비롯되었을까요ㅎㅎ




심쿵의 순간, 노루 숨은그림찾기ㅎ

  곶자왈 같은 고근산을 내려오다 심쿵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에 발소리가 들립니다. 꿩 발걸음 소리보다는 크고 사람 발소리보다는 작은 소리가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움직입니다. 귀를 쫑긋거리며 폰카 동영상을 틉니다. 참! 그 동영상 한 번 보고 글을 써야겠네요~ 아쉽게도 영상에 잡히진 않았습니다. 분명 그 녀석을 봤거든요. 몸통은 숲에 가려진 머리부터 목까지. 털 색깔이 약간 누런데 좀 더 진한 회색빛이었거든요. 바로 노루였습니다.

  그걸로 만족하고 내려오는데 새들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기분까지 상쾌합니다. 과히 제주는 새들의 천국입니다. 제주도는 시내에서 조금만 걸어도 10분 이내 거리에 숲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렇게 새들의 지저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습니다.




  고근산을 내려오면 벌써 코스 반 이상을 돈 겁니다. 올레책에 7-1코스는 마땅히 점심 먹을 식당이 없다고 강조해서 제남아동복지센터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뚤레뚤레 식당을 찾으며 내려옵니다. 서호마을 표지석 바로 옆에 '병천순대국' 간판이 보여 돼지국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습니다. 이런 자료들이 올레책에 등재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올레에서 만난 부녀 올레꾼

  포만감과 코로 전해져오는 진한 귤 향기를 음미하며 룰루랄라 걷는 데 올레 폼의 중년 남자와 20대 딸이 함께 펜이를 살짝 추월합니다. 그래서 말은 붙였습니다.

  "올레 걸으신가요?"

  그래서 함께 잠시 걷게 된 길벗이 됩니다. 고향은 무안으로 서울 사는데 직장이 제주로 쉬는 날 가끔 올레를 걷는다고 합니다. 펜이가 올레 걸으며 느낀 얘기와 그가 느낀 올레 얘기 그리고 따님과 나눈 얘기들이 올레를 즐겁게 해줍니다. 한참을 걷다가 펜이 발이 불편해서 걸음이 좀 느리니 먼저 가시라고 하고 헤어집니다.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는 부녀의 뒷모습에 펜이의 장성한 두 딸이 생각납니다. 반드시 함께 와서 올레를 걷기로 다짐해봅니다.




유일하게 논을 볼 수 있는 하논 분하구

  올레를 걸으며 논을 처음 봅니다. 일강정이라 해서 강정 포구와 강정천이 있는 강정은 물이 스며들지 않아 논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제주 하천이 대부분 건천인데 강정천에 물이 흐르는 것을 봤거든요. 그런데도 논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림사를 내려오다 하논 분화구에서 논을 트랙터질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육지 여느 논과 똑같습니다. 논갈이하는데 새들이 땅에서 나오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모인 모습이 평화 그 자체입니다. 먹이 앞에서 트랙터가 가까이 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아마 적이라는 느낌보다 자기들에게 생명의 먹이를 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로 생각합니다. 하논 분화구에서 머리 풀어헤친 미인 한라산을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기고 하산합니다.




세계조가비박물관

  종점 스탬프가 얼마 남지 않은 솜반천 교차로 옆에 '세계조가비박물관 500m' 이정표가 보입니다. 1코스에 '성산포조가비박물관'도 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지나쳤거든요. 그래서 500m 떨어진 세계조가비박물관으로 절뚝거리며 갑니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15km로 좀 쉬운 코스라 시간 여유가 있어서 경로를 이탈합니다.




  6천 냥의 입장료를 내고 1층부터 3층까지 쭉 돌아봅니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펜이, 조가비의 화려함에 깜놀합니다. 조가비 이름이 조개라는 짐작만 했지 정확한 어원도 몰랐거든요. 조가비의 화려함에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셔터를 누릅니다. 촬영이 가능한 박물관입니다. 단, 액세서리 코너는 안 된다네요.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담당자분이 오셔서 몇 군데 해설을 해주십니다. 감사했지요. 그런데 억양이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아 로봇에게서 설명을 들은 느낌입니다. 잠시 경로를 이탈한 펜이 정상 경로보다 더 값진 체험을 했습니다.




  올레여행자센터 앞 종점 스탬프를 찍으며 장장 28일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됩니다. 올레센터 1층 카운터 담당자가 "수고하셨네요~ 완주를 축하합니다~"라며 자기 일처럼 좋아합니다. 덩달아 펜이도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2층에서 내려온 올레사무국 직원에게 간단한 신상 명세와 소감, 설문서 작성한 후 완주증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올레 포토존에서 기념촬영도 합니다. 올레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고 하네요. 그리고 올레를 걸으며 느낀 것이 많기에 올레 후원 약정도 합니다. 앞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또 올레를 걸을 거라며 포부도 밝혔습니다.




제주올레 완주증서

  지난 4월 11일 우도에 처음 올레에 발을 내디딘 후 28일만인 오늘 5월 8일 26개 코스 약 430km를 걸었습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포기하고픈 우여곡절도 있었고 지금도 발가락에 영광의 상처가 있습니다. 길에서 때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아직 제주 땅을 못 벗어났으니 나중에 올레 완주에 대한 소감도 정리해서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참! 올레 완주기를 더 다듬어서 책으로 내고픈 소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충대충 포스팅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올리다 보니 글 밥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딸들아~ 이런 제목으로 책을 내면 어떨까?

"스타(스스로 타락한)작가의 허접한 제주올레 종주기"ㅋ



피로를 한 방에 날려주는 이쁜이들


<오늘의 경제활동>

아침 서귀포 산수정 식당 된장찌개 7,000

점심 병천 산가네 순대국밥집 돼지국밥 7,000

세계조가비박물관 6,000

저녁 24시뼈다귀탕신제주점 뼈다귀탕 8,000

서귀포~제주공항 버스비 5,500+시내1,150

레인보우 게스트하우스 18,000

계 52,65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