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부터 시작한 제주올레 완주가 28일만인 5월 8일 끝났다.
총 26개 코스 425km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에 큰 의미를 둔다.
'힐링'이라는 건강과 '비움'이라는 철학적 목적이 맞아떨어진 여행이었다.
올레를 걷는 자체가 힐링이었다.
올레 걸으면 걸을수록 또 걷고 싶은 마력이 있었다.
수술한 지 8개월 된 어깨의 부담으로 배낭을 비워야 했다.
두 번에 나눠 물품을 택배로 보냈다.
마음의 비움보다 육체의 비움이 급선무였다.
비우러 갔는데 한 달 동안 올레 완주도 욕심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처음 6일간은 지인과 동행해서 심심치 않았다.
22일간 나 홀로 고독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올레에서 만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펜이에게 위안을 줬다.
한 마디로 사람이 그리워 먼저 말을 붙였다.
5코스에서 감귤 농가의 호의로 과원 구경과 똥돼지 화장실, 안방에서 커피 대접까지 받았다.
77세의 할아버지가 잘 계신지 궁금하다.
7코스 월평 포구 근처에서 70대 낚시 친구 세 분의 현지인을 만났다. 뱅에돔, 자리돔 즉석회와 매운탕 그리고 제주 제사 음식까지 얻어 먹었다. 세 분의 본격적인 제주어 회화에 어안이 벙벙했다. 건강히 잘 계시는지 이 자리 빌어 그때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다.
7코스 대포 포구 샬레 게스트하우스의 게스트 덕에 고사리 꺾는 체험도 했다.
닉네임 '연하임' 잘 계시나?
10코스 레몬트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 라이더 중인 동양계 캐나다인을 만나 사우나를 같이 하고 고기국수를 함께 먹어 인스타그램 친구가 된 Andy
인스타그램에 한국 사진이 지금도 게재하는 거 보면 아직도 한국 라이딩을 즐기나 보다.
17코스에서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관광하러 온 중국인 따촹(大强) 부부와 이메일로 셀카 사진을 공유하고 19코스에서 세 살 아들을 짊어지고 걷는 경기도에서 온 젊은 부부를 만나 커피를 나눠 먹으며 올레를 공유했다.
18코스 초입 제주 시내에서 중학교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서로 많아지는 흰 머리카락에 건강하기를 바라며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개업 후 첫 손님이 되어 후한 저녁상을 받은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18코스 에녹 게스트하우스
7,000km 해안선 도보 여행 중인 환경운동가 '대한민국 곰'의 닉네임을 가진 이흥수 씨 등 올레에서 만난 이들은 진정으로 올레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분들이었다.
블로그 서로 이웃이며 표선 해비치 해변에서 '까떼커피' 카페를 운영 중인 '하늘 나그네' 양성룡 장로님을 3코스 종점에서 만났다.
함께 사우나를 하고 저녁을 대접받고 형님 동생이 되었다.
7코스는 인연의 코스인가 보다. 사람에 이어 동물도 펜이를 반겼다. 외돌개 부근에서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 떼를 만나 제주도의 신비로움이 더했다. 그대는 꿩의 에스코트를 받아봤는가?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솔길로 자기 갈 길을 가는 암꿩을 만났다. 한참 그녀의 에스코트를 받아 우쭐했다. 처음 만난 올레꾼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 제주올레가 갖는 포용력이다.
곶자왈이나 숲길, 오솔길에서 고즈넉하게 혼자 걷는 길은 사색의 통로였다.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도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자유인으로 살게 허락한 가족이 고마웠다.
옷가지와 숙식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마눌님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떨 때는 무념의 상태로 내 발소리만 들으며 걸었다. 내 발소리에 내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 발소리에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숲을 방황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도 순간 놀라지만 괜히 미안했다. 새들의 합창소리에 휘파람으로 답례하는 건 예의다. 새들은 알아듣고 더욱 힘차게 노래하지만, 펜이는 새들의 언어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제주 본토 할망, 하르방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삼다(三多)와 삼무(三無) 그리고 삼보(三寶)의 제주도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
거지, 도둑 그리고 대문
바다, 한라산, 그리고 제주어
석 삼(三)이 모두 공감이 가는 제주도였다.
바닷가에 시커멓게 드리워진 돌과 우산대를 여지없이 부러뜨리는 바람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의 해녀
친절한 제주도민 그리고 개인 사유지를 자유스럽게 다닐 수 있도록 올레에 양보한 주민들
화산폭발로 바다에 우뚝 솟은 남한 제일의 한라산 그리고 독특한 언어에 외국 같은 제주
제주는 모든 게 신비롭게만 다가왔다. 중도 포기하고픈 우여곡절도 있었다. 중간에 지인이 펜이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 날개 한 쪽을 잃은 기분이었다.첫 날 20km로 무리해 둘째 날 발가락 물집이 생기면서 반 코스씩 돌기도 했다. 완주 이틀 남겨두고 또 물집이 생겨 8km를 절뚝거리며 걸었다.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거로 기억된다.
올레 중 가장 긴 코스(24km)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길이 대부분인 마의 4코스였다. 그래서 4코스를 거의 끝부분에 일정을 잡았었다.
보말 잡이 체험을 하면서 휴대폰이 바닷물에 살짝 빠져 충전이 안 되기도 했다. 비오는 날은 SD카드를 읽지도 못했다. 그때마다 서비스센터 가기 전에 해결되는 행운이 따랐다. 새로운 만남과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걸은 7-1코스 (제주월드컵경기장 ~ 올레여행자센터)는 신의 한 수였다. 고근산을 오르며 푹신푹신한 오솔길과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한라산 조망은 피날레를 장식해줬다. 올레 사이 사이에 자주 접하는 귤 향기는 28일간의 누적된 피로를 말끔히 씻어줬다. 올레 코스를 잠시 벗어나기도 했다. 헛생각하다 리본을 놓치기도 했다. 다른 볼거리를 보려고 일부러 코스를 벗어날 때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만 봤던 역사의 현장을 볼 때는 가슴이 먹먹하고 울분이 나왔지만, 고인과 가족을 생각했다. 미완의 제주 4.3 사건이 그랬고 노무현, 김대중 정부가 했듯이 새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제주 곳곳에 아픈 생채기를 남긴 일제강점기의 동굴 진지 그리고 격납고, 비행장 등 잘 보존했으면 했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혼밥을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가끔 게스트하우스 친구들과 함께해 혼밥을 벗어나기도 했다. 매일 15~20km, 최대 30km를 걸으며 에너지 보충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제주 흑돼지를 찾았지만 2인분 이상만 가능해 아예 못 먹거나 2인분을 먹어야 했다.
제주 향토음식을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옥돔구이, 자리물회, 자리젓, 갈치국, 몸국, 고기국수, 보말죽, 제주 흑돼지구이 등등
숙박지는 거의 종점 게스트하우스에서 해결했다.
10-1, 11, 12, 13, 14-1코스는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모슬포와 현경면의 게하를 이용했다.
민박은 처음으로 1코스 강병희 이장네 민박을 이용했다. 이장 사모님의 정성 어린 아침상은 집밥처럼 맛있었다.
어렵게 구한 게하가 여성 전용이라고 할 때 역차별을 당한 느낌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검색해 겨우 찾아간 사우나도 여성 전용이 있었다.
28일간의 장정을 마치고 올레사무국 직원의 환대를 받을 때는 마치 마라톤 완주자처럼 들떴다. 모든 코스의 시작, 중간, 종점 스탬프가 찍힌 제주올레 패스포트로 완주증서를 받았다. 간단한 기념품 수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올레 후원을 약속했다. 나중에 반드시 가족과 함께 또 올레를 걷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5월 중순 출국 계획 있어서 제주올레 일정이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비우러 갔는데 한 달 동안 올레 완주도 욕심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올레를 완주하고 다음 날 한라산 백록담까지 밟으려는 펜이 욕심을 선문대 할망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발가락 물집도 물집이지만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네 번의 해녀 물질을 목격했지만 해녀가 갓 잡은 해산물을 직접 먹어보는 체험은 하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비 내리는 공항을 향했다.
제주올레에서 만난 이쁜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