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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Oct 09. 2022

말 한마디에 왜 통증이 느껴질까?

감정 철학

이 글은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색하고 수정해서 실은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의 상황을 조금 발췌하여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서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존경하라. 거기에 상황을 바꿀 힘이 있으니. 자신을 함부로 비하하지 말라. 멋진 인생을 만드는 첫걸음은 바로 자신을 존경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감정 철학’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갈수록 막연해 짐을 느낀다. “힘을 빼자. 나의 느낌도 철학이다”라고 외쳐본다. 고심하던 끝에 얼마 전에 상담했던 아이가 생각났다. 나이는 열다섯, 이름은 영미(여)다. 영미가 어렸을 때 부모님 이혼하고 아빠, 할머니, 여동생하고 살고 있다. 엄마가 안 계시니 영미가 동생을 돌보고 할머니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할머니는 영미 몰래 학교에 전화해서 학업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영미는 가끔 수업하다가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다. 체육 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그러면 모든 선생님들이 흩어져서 찾아다닌다. 처음에는 정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영미를 찾아서 얼굴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다. 살짝 이러한 긴장감을 즐긴다고나 할까. 영미의 말을 듣다 보면 아기 장난감 모빌이 생각난다. 하나를 건드리면 모든 것이 꿈틀거리듯이 딱 그렇다. 영미는 왜 이토록 혼란스러워할까? 마음이 정돈되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상태가 더 안정적이라는 사실, 참 아이러니하다.  

   

정신역동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을 의미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격하게 싸우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나타나는 것이 정신역동 현상이다. 영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영미가 어렸을 때 공부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빠가 딸을 옥상으로 끌고 가서 “같이 죽자”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고 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영미의 두 눈을 보면서 하염없이 함께 느껴 주었다. 어른과의 신뢰감을 쌓아야 할 시기인데 그것이 무너졌다.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단계에서 1단계 신뢰감 대 불신감이 무너지면 2단계 자율성 대 수치심에 지장이 있다. 그리고 초등시기는 3단계 근면성 대 열등감인데 영미는 열등감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 할머니와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최대한 '잘하는 척'하며 지냈다. 결국 청소년기 4단계 자아정체성 대 역할 혼미에서 영미는 혼란스럽다.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 가정형편, 아이인데 어른인 척 행동하게 되었다. 너무 큰 옷을 입다 보니 행동도 소극적이다. 영미는 가끔 고슴도치처럼 뾰족할 때도 있다. 옆에서 보듬어 주면서 믿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어른과의 신뢰감을 쌓는 중이다. 눈빛이 점점 선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니체의 성장 환경도 엄숙하고 어두침침하고 경직된 상태로 보였다.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목사의 딸, 두 분 다 경건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자라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자리를 메꾸는 역할 '꼬마 목사'로 통했다. 나의 관점으로 보면 '애 어른'이다. 그렇지만 끊임없는 관심과 자극으로 철학자가 되었다. 나는 철학책을 보면서 은연중에 철학자들의 심리들이 궁금해져서 가정환경을 눈 여겨보는 편이다. 이것도 직업병이다. 그런 고로 영미와 니체가 동일시되는 점을 찾았다. 영미도 '애 어른'이다. 가정환경으로 일찍 철이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 죽음, 영혼에 대한 글을 좋아한다. 뭐 굳이 끼어 맞춘다는 생각은 들지만, 글을 적으면서 영미도 니체처럼 잘 성장하리라 믿어 보련다. 철학자까지는 아니지만.      


영미는 유독 엄마가 없다는 것에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갓 낳은 동생을 두고 갔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이 늘어났다. 엄마라는 단어를 가슴속에서 지워 버렸다. 여자 혐오 철학자로 알려진 니체도 여자들 틈에서 아버지 대신 역할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것처럼 영미도 힘겹다고 말했다.    


사람은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뭔가를 붙잡는 심리가 있다. 붙잡는다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집착은 또 의존이다. 의존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의존도 명약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냐고? 일 중독도 일에 기대는 것이고, 글 중독도 글에 기대는 것이다. 영미는 사람에게 기댈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림 그리기와 니체 철학자에 기댄 것이다. 또래가 없는 니체도 혼자 놀았기에 붙잡은 것이 작곡과 시 쓰기였다. 

  

지금까지 억압된 감정이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서 높은 성이 된 것이다. 영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아니 관계를 맺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른다. 지금까지 롤 모델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 맺기란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감정을 억압하고 참아야 된다는 것이 훈습되어 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압력밥솥의 김처럼 폭발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한 법이지만 무슨 일을 막론하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 니체 -


이 명언을 보면서 영미에게 힘을 주고 싶다. 영미가 언젠가 말을 했다. ‘동화 작가’가 되겠다고. 집에서는 “네가 무슨 동화 작가가 되냐고, 아예 때려치우고 공부나 하라고.” 하지만 영미 옆에는 든든한 상담사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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