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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Oct 17. 2022

벼랑 끝에 선 감정 어떻게 부활할까.

감정 철학

이 글은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색하고 수정해서 실은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장 자크 루소'의 상황을 조금 발췌하여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서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째는 존재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살기 위해서.  -장 자크 루소-


노사연의 노래 <만남>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 요즘 들어 부쩍 만남이라는 단어가 다가왔다.  만남은 나를 언제나 설레게 한다. 하지만 불안하게도 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경험한 것에 기초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갖가지 우상을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도 품고 있던 욕심이 눈을 가려서 많은 돈을 사기당했던 적이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만남도 참 소중하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나보니 낯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얼떨결에 '창근'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나이는 17세,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이 있었다. 창근이의 가정 분위기는 화목하기는커녕 공포스러웠다. 왜냐하면 술에 잔뜩 취하신 아버지는 자주 허정 대셨다. 이럴 때마다 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와장창~  단번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버지와 싸움이 끝난 뒤 슬그머니 나와 보니 어머니가 손수건을 가지고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바스대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적도 많았다.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덜컹덜컹했다고 한다. 


역전으로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는 날은 언제나 자상하고 살뜰히 대해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창근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내성적으로 변하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불안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창근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창근이는 나날이 한숨을 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철학자 루소의 인생도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달픔이 있었다고 한다. 루소의 어머니는 아들 낳고 9일 만에 죽고, 아버지는 루소가 10살 때 집을 나갔다. 루소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환경에 어떻게 독서광이 되었을까? 사람은 우연찮게 바닥을 치면 바닥을 친 만큼 올라온다고 생각한다. 래서 루소는 죽기 살기로 책을 붙들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창근이는 애초부터 이런 가정을 만났다고 한탄만 했을까 아니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를 보고 사랑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까? 맞다. 낙담에 빠진 창근이를 구원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고 보인다. 창근이에게 한 걸음씩 접근하기 위해 '문장 완성검사'를 해 보았다. 


검사해 본 결과 창근이는 타인의 사랑과 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이 강하였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를 토양으로 하여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나치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잠시 글을 본다면.

“우리 집은 콩가루 집안이다. 자신의 문제점은 게으르다. 언제나 잠이 많다. 무기력하지만 어렸을 때 활동적이었다. 어머니가 화낼 때 반항심이 올라온다. 뭐든지 그저 웃어넘긴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남을 위해 살겠다. 남들이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겠다. 해외 봉사도 하고 싶고, 세상도 사랑하고 싶다. 타인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싶다,” 

창근이처럼 남을 위해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한테 만족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도 허다하다. 물론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자신의 삶이 만족되었을 때 말이다. 누구나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듯이 창근이는 지금까지 과거의 힘든 것을 붙잡고 살았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살았던 것이다. 


우선 가족상담을 통해 각자 돌아보게 하였고 지금까지 힘들었던 창근이의 모습이 학교에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하였다. 창근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자존감도 높이게 되었다. 어느 날 창근이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보다 낫겠죠?” 

“그럼 당연하지.” 


스스로 배울 생각이 있은 한, 천지 만물 중 하나도 스승이 아닌 것은 없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스승이 있다. 하나는 대자연, 둘째는 인간, 셋째는 사물이다.  
-루소-


창근이에게도 따뜻한 엄마가 있었고 루소에게도 엄마 같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지식인층 부인들이 있었다. 멘토 같은 그분들을 만나 정신적인 지지대와 물질적인 제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루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만남도 끝까지 함께하진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사람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면 자기 보호본능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창근이와 루소의 삶을 대입해 보았지만 결국 가족의 유무를 떠나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와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창근이의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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