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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Oct 30. 2022

'나 여기 있어요'

감정 철학

이 글은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색하고 수정해서 실은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헤겔' 이론을 조금 발췌하여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서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모든 사건에는 본질적인 면이 숨겨져 있다. 헤겔에게 그 본질적인 면이란 절대정신이고, 인간의 역사는 이 절대정신이 그 본질을 점차 분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절대정신의 본질은 자유이다. 역사는 이성적인 자유를 점차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p250     

‘지랄 총량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예전에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책을 보았다. 중2병도 지랄을 떨지 않으면 나중에 엉뚱한 곳에서 표출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춘기 때에 겪어야 할 고비를 다 치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기품 있게 살더라도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표면과 내면은 다르다. 정리하면 지랄을 떨며 사는 것이 오히려 제대로 사는 것이고 막힌 것을 뚫어 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고 죽는다고 한다.


지랄이란? 찾아보니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필터 없이 그대로 뱉어 내고 그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들의 뇌가 뒤죽박죽이듯이 지랄의 모습도 가늠할 수가 없다. 내가 소개할 아이도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뱉어 내고 그 말로 친구들에게 상처도 주고 싸움도 흔히 일어난다. 학교에서 골치 아픈 녀석이라고 낙인이 찍혔다. 입만 열만 욕을 예사로 하니까 순하고 말썽 없는 아이들은 가까이 근접하지도 못한다. 사실 욕이 '나쁘다' '좋다'라고 평가하기보다 청소년기에 선풍처럼 소용돌이치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야 ㅁ새끼야! 게임 시합할래?”

“싫다. ”

“와 이 등신아. 질까 봐 겁나나. 야야 내가 저 줄게 미친 ㅁ새끼”

“니는 욕만 하나?”

“ㅁ발, ㅁ새끼 병신 꺼져라.”     


이 아이의 이름은 병수, 가족은 부모와 3명 살고 있다. 아이를 상담하려면 우선 부모를 봐야 한다. 병수 아버지는 5형제의 막내, 어머니는 5남매에 중간이다. 병수는 의존성이 강하지만 외동답지 않게 키우려고 부모가 무척 공들였다. 하지만 병수는 공부를 우선으로 하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삽시간에 사건을 터뜨리기도 했다. 가끔 용돈을 두둑이 받아서 친구들에게 맛있는 과자를 퍽퍽 사 주면서 히트를 쳤다. 친구들은 맛있는 거 받아먹기 위해 많이 따랐다. 결국 외동의 기질이 보인다.


아들러의 출생 순위를 보면 맏이는 폐위된 왕이지만 강한 성취동기로 자신의 자리를 확립하는 편이고 막중한 책임감도 있다. 중간은 경쟁자이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중재자 역할도 한다. 막내는 과잉보호로 인하여 무대 중심적이고 다른 형제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애쓴다. 결국 욕심이 앞선다. 외동은 의존성이 높다. 누군가 도전하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독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한다.    

 

병수 아버지는 막내의 특징으로 욕심이 앞서다 보니 일을 잘 저지른다. 집에서 의논도 하지 않고 운송 사업장을 떠맡아하다가 쫄딱 망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버럭 화를 내고 집안을 왈칵 뒤 짚는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도끼 입질을 하는데 엄청 불안함을 느낀다. 어머니는 중간이다 보니 존재감이 사라질까 봐 남편한테 기꺼이 맞춘다. 아버지가 일을 저지르면 어머니는 수습한다. 이러한 세월을 꾹꾹 누르며 살다 보니 결국 자신의 존재감이 확장되지 못한 채 억압되었다.

    

억압된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던 어머니는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살아온 흔적을 보면 내면의 힘이 없다. 어머니는 상고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 부모님께 다 갖다주고 동생들을 돌봐 주며 착한 딸 노릇을 톡톡히 해 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자유가 막히고 몸을 움츠리고 살았다. 어머니가 남편한테 대놓고 말을 못 하고 뒤에 가서 악담하고 험구하면 누워서 침 뱉기다.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본질은 이성적인 자유를 점차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 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와 병수는 피해자다. 아버지는 가해자다. 하지만 피해자나 가해자나 같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이 기회에 아버지가 상담실에 와서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미러링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가족들은 착잡한 마음으로 긴 숨을 내뿜고 있었다. 인풋 되니 아웃풋 되는 것이다. 딸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닮아가고,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닮아간다. 병수도 아버지를 무진장 따르면서도 원망했다. 그 증오감이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욕은 하나의 구실이고 사실 원초적으로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였다. 사랑과 자유가 없는 삶은 산지옥이다. 말 그대로 욕하고 지랄하고 허세 떠는 것의 본질은 ‘나 여기 있어요’라는 존재감 확인의 신호다. 병수가 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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