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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Nov 13. 2022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감정 철학

이 글은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색하고 수정해서 실은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쇼펜하우어'의 상황을 조금 발췌하여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서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인간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들은 자신의 충동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충동과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의지(욕망)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이므로, 채우고 또 채워도 여전히 생겨난다. 인간은 그렇게 충족되지 않는 욕망 때문에 늘 고통을 받는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p263     




쇼펜하우어 아버지가 사업가였는데 아들이 사업가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호화 유럽여행을 시켜주면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주원했으나 결국 여행 다녀와서 철학 공부에 더 매진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 내가 상담한 아이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비슷하여 나누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재원이, 외동아들로 가족들에게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랐다. 재원이의 아버지도 법원에서 일하는데 아들이 판사가 되기를 원했다. 아들을 위해 온갖 투자를 하고 판사 체험 내지는 멘토도 붙여 주었으나 그럴수록 음악에만 매진했다. 재원이의 꿈은 음대에 가서 졸업한 후 **시립 교향악단에서 트럼펫 연주가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허용을 하지 않는다. 굳이 내담자를 거대한 철학자에 비유한 이유는 요즘 부모들이 자녀의 의견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우선으로 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재원이의 집안 분위기도 아버지는 엄하고 과묵하며 다혈질이다. 변수가 많은 다혈질의 사람과 살려면 가족은 꼭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런 고로 어머니는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을 못하고, 아들은 음악에만 집착하고 있다. 어머니는 다행히 바깥에서 개인 모임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이 왕성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보다 아버지의 눈치만 는 상태다. 다행히 아들에게 음악공부 지원은 충분히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과 자꾸만 엇나가기만 한다. 마음이 편치 않은 재원이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해 자해를 시작했고, 이것도 모자라 자살시도까지 마음먹었다.

   

어느 날 재원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음악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자.”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무서웠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다리가 난간에 걸쳐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공원으로 갔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마음먹은 김에 다시 도르코 칼을 꺼냈다. 자해를 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이때 바로 뛰어온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야! 자식, 그만해라. 음악 한다고 말해라. 공부는 죽어도 싫다고.”

“어림도 없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나는 바로 피한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버지의 냉담한 성격에 재원이 가족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가족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향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뜻대로 아들을 키우려고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피하기만 하고, 어머니는 남편의 힘에 눌려 꼼짝 못 하고 있다.

사티어 경험적 가족치료 분석표

“사티어 이론”에 다섯 가지 의사소통 유형을 보면 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 일치형으로 나뉜다. 그중 재원이 아버지의 완고한 성격은 바로 초이성형에 속한다. 초이성형은 규칙과 옳은 것만 중시하고 극단적이고 매우 완고하다. 쇼펜하우어 아버지 역시 초이성형으로 아들과 일방향적인 소통이었다. 건강한 부모라면 일치형으로 의사소통이 매우 진실하고 자기감정을 잘 알아차린다. 부모의 반응에 따라 자녀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한다. 쇼펜하우어의 어머니도 작가로 활동하면서 예술가 기질이 풍부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예술가인 아내와 사업가인 남편이 서로 소통 부재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스스로 비관하다가 복합적인 이유로 쇼펜하우어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했다.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 되지 않는 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는 얼마나 힘든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사티어 가족치료”로 가계도를 그려서 동욱이 아버지의 욕구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알려주고 이 자녀가 다시 대물림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시적으로 나타난 표를 보면서 아버지는 조금씩 기압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드디어 음악을 하도록 허락을 했다. 재원이는 이제야 제대로 자신의 꿈에 안정을 되찾고 부모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음악에 마음 놓고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아버지가 아들한테 큰 기대가 없었다면 쇼펜하우어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원이 아버지 역시 아들한테 완고하게 판사가 되라고 하지 않았다면 재원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바가바드기타”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결과에 연연했던 부모, 자녀가 극단적으로 나가야만 정신을 차리는 부모, 부모교육이 절실히 필요할때다. 자녀가 잘 되든 못되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선택한 그 길을 열어 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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