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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13. 2021

동안이냐 노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단상(7)


  며칠 전, 알쓰인 주제에 지인의 추천에 요즘 핫하다는 그 '곰표' 맥주를 마셨고 SNS 피드에 인증샷을 올렸다. 알쓰가 맥주 마시는 희한한 광경 인증이 아니라 놀랄 노 자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구실 삼아 올린 피드였다. 무슨 일인고 하니, 무려 신.분.증. 검사를 받은 것이다. 어쩌면 편의점 직원이 으레 습관적으로 한 검사일 수도 있고, 그게 다 마스크 덕분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아니 근데 뭔 신분증 검사에 이렇게 히죽히죽거리냐 하면... 그간 동안보다는 '노안' 소리를 훨씬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대학, 군대, 첫 직장을 거치면 자고로 풋풋한 학창 시절 얼굴이 하나둘 사라지기 마련인데 애석하게도 난 사라져야 할 그 풋풋함을 이미 고등학교 때 잃었다. 술, 담배를 즐기는 학생이었다면 횡재 같은 얼굴이었겠다만... 앞서 말했듯 알쓰에다 담배는 혐오하는 사람이라 얼굴값 못하는 인생이었구나, 싶다. 그러다 보니 대학, 군대, 첫 직장 때 오랜만에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넌 어째 얼굴이 그대로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바로 느낄 수 있듯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말이 점점 좋게 들리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스물 중반의 얼굴이 고등학생의 얼굴이었던 거니 마냥 좋게 들을 수만은 없던 표현이었다. 


  그때마다 방어 기제처럼 꺼내든 말. '그봐, 어렸을 때 노안들이 나이 들수록 덜 늙는다니까.' 였다. 그렇다고 뭐 동안 선발대회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의 동안도 아니고 오히려 내 눈에는 해가 가면 갈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얼굴을 (나만의 생각일지라도) 매년 느끼는 탓에 그다지 기쁜 일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무려 신분증 검사를 당해서 저리도 기뻐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이에 비해 동안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한 사건이 또 있었다. 헬스장에서 여느 때처럼 운동을 깨작깨작 하고 있었다. 새로 온 트레이너가 쓱 다가와서 자세를 잡아준다며 말을 걸어왔다. 일단 초면이니 존대를 하던 그는 두세 마디 지나고 나서부턴 말을 툭 놓았다. 그 사람만의 화법이겠거니, 뭐 그쪽이나 이쪽이나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저녁 먹는데 어머니께서 새로 온 그 친구에게 1일 P.T.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P.T.받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내가 아들인 걸 알게 되었단다. 트레이너가 깜짝 놀라며 '학생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근데 학생처럼 보인 게 정말 동안이어서가 아니라 마스크에 운동갈 때 거의 모자까지 쓰는 터라... 옷도 개인 운동복 아니고 헬스장 옷 입으니 뭐... 따지자면 눈만 보고 학생으로 판단한 게 아닐까 싶어 그다지 기쁘진 않았다.


  어렸을 때 노안인 덕에(?) 나이 먹고도 노안 소리를 듣지 않는 건 좋다만, 어디 가서 동안이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가는 욕지거리 혹은 그대로 손찌검이라도 받을 얼굴이니 최근에 한 두 가지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오늘의 단상...




(좌) 공룡상이라 콘이 대신해 준 내 얼굴  (우) 잠시나마 동안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만... 라이언이 대신해 준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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