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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27. 2021

다 틀렸다

단상 (9)


 강아지와 산책시키고 집으로 향하던 윗집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일전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윗집 아랫집에 사는 걸 확인하고 강아지 때문에 시끄럽지는 않냐고 선뜻 양해를 구하셨던 그 아주머니. 그 강아지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다. 몰티즈와 무언가가 섞인 듯한 강아지, 그러니까 아무리 뛰어다녀도 층간 소음이랄 걸 만들만한 사이즈가 아닌 '작고 소즁한' 멍멍이... '들'. 아마 아주머니가 강아지가 아랫집에 쿵쾅거리는 소음을 유발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이유는 그들의 덩치가 아니라 수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래 봤자 두 마리였다. 두 마리는 공룡을 닮은(왜 눈물이 흐르지) 나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주인 눈치를 슬슬 살피다 그중 큰 아이가 얕은 소리로 '(으르르) 오...앙...!' 하고 짖는 소리를 뱉었다. 짖었다고 하기에도 참 머쓱할 만한 헛기침 같은 소리였는데, 아주머니는 사소한 펫티켓이라도 엄청 신경 쓰는 건지 '조용~!'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강아지를 진정시켰다. 차라리 날 보고 속 시원하게 '왕!!!'하고 짖기라도 했으면 덜 민망했으리라. 괜히 민망한 분위기를 무마해보려 강아지에게 '안녕'하고 말을 걸었다. 


 아까 소리를 낸 큰 아이는 또 아주머니를 쓱 보고 나를 쓱 보고 다시 또 아주머니를 쓱 봤다. 신기한 생물체가 있다는 걸 주인에게 알리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같은 리드 줄에 매달린 큰 아이보다 덩치가 2/3인 아이는 성격이 소심한 아이인지 눈길 한 번 안 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아예 새끼는 아니었지만 덩치가 작은 걸로 보아하니 큰 강아지의 새끼란 생각이 들었고, 품 안의 자식이라고 자기 새끼랑 같이 있는데 공룡 닮은 생물체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괜히 짖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엄마랑 딸인가 봐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짧은 순간이지만 침묵에 휩싸이는 게 싫어 한 마디 더 툭 내뱉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아빠랑 아들이에요. 큰 애가 아들, 작은 애가 아빠예요


 오잉? 눈이 휘둥그레지며 진짜냐고 묻는 순간 띵-하고 엘리베이터는 우리 집 층에 섰다. 안녕히 들어가시라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엄마와 딸'이 아닌 '아들과 아빠'를 보내주었다. 그 찰나에 누가 아빠 강아지고 아들 강아지인지 판가름할 단서가 덩치뿐이었다지만, 틀려도 아주 그냥 제대로 틀렸다. 말 그대로 '다' 틀린 추측. 그간에 봤던 같은 종의 큰 개 - 작은 개는 거의 어미와 새끼, 그러니까 어미가 낳은 새끼를 한두 마리 빼고 분양 보내고 같이 기르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서 엄마 강아지와 아기 강아지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심심하게 흐른 하루 끝에 생각지 못한 반전에 괜스레 웃음이 맺혔다. 


파이리가 아빠고 리자몽이 아들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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