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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l 08. 2021

서핑과 악천후의 상관관계

여행에세이, 강원도, 양양


 실외 스포츠에 좀처럼 구미가 동하지 않는 편인데도, 수영은 꽤 좋아해서인지 물에서 하는 스포츠에는 거부감이 덜하다. 그렇다고 이번에 다녀온 서핑이라든지 다른 야외 수상 스포츠를 스스로 발품 팔아 다녀오려고 한 적은 없었다. 말로는 뭘 못하랴. 몇 년 전부터 휴일에 서핑하러 다녀오던 후배에게 '다음에 서핑 같이 가자'라고, 거의 뭐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따위의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을 하고는 했다만, 정말 마음이 동했다면 곧바로 검색창에 '국내 서핑', '서핑 강습' 같은 검색어를 입력했어야 했다.


 해 보고는 싶지만 막상 하려니 엄두가 안 나던 서핑을 잊은 채 여름을 한 해, 두 해 보내던 중 드디어 기회가 찾아 왔다. 단톡방에 올라온, 바로 몇 주 전 제주에서 서핑한 멤버의 생생한 후기에 우리 모두가 마음이 동해 그 자리에서 바로 지난 주말의 양양 서핑 여행을 '확약'했다. (가네 마네 어쩌네가 아니라 정말로 숙소부터 차량, 서핑 강습까지 일사천리로 예약했으니 확약인 걸로)


 관건은 날씨. 하필 때아닌 장마가 남부에서부터 밀려든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렸지만, 날씨 좋은 날을 택해 즉흥으로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니 당일날 날씨가 좋길,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파도 타러 가자'는, 단톡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공지 뒤엔 '비 맞으면서...'란 문구가 붙었다. 서울을 떠나 양양으로 가는 내내 먹구름이 우리를 따라오고 차 앞 유리에 부슬부슬 비가 흩뿌렸지만, 걱정했던 만큼 날씨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서핑하기엔 좋은 날씨였다.


2시 - 3시: 양양 도착, 체크인, 서핑 강습 시작 / 날씨 흐리나 비는 오지 않음

3시 - 4시: 실내 교육 후 야외 강습/ 여전히 흐림, 아주 가는 비가 지나치듯 한 두 방울 떨어짐


처음 입어 본 서핑 슈트의 갑갑함이란... 슈트를 입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주룩 흘렀으니 해가 쨍한 날씨였으면 이 갑갑함에 더위까지 더해졌을 터, 이럴 거면 차라리 흐린 날씨가 좋단 생각이 들었다. 강습받으며 기온을 체크하진 않았지만, 그전에 본 일기예보엔 22~23도가 찍혀있던 게 기억났다. 실내 강습에 이어 야외에서 몸을 실제로 움직이는 야외 강습 때도 너무 덥지도, 그렇다고 여름치곤 쌀쌀한 날씨도 아닌 딱 적당한 기온이라 느껴져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행에 와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은 좋은 게 좋은 거란 마음가짐이 제일 좋은 게 아닐까, 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할 때였다.


멤버 찬스로 무려 숙소는 양양 쏠비치! 짐만 놓고 부랴부랴 예약한 서핑 센터로 달려갔다.
수트로 갈아입기 전, 서핑 온 거 온 동네 소문 내려는 사진도 한 컷 :)
흐리긴 흐린 날씨



4시-5시 :

점점 빗방울 굵어짐. 수온 약간 차가움,

수트 덕분에 춥다는 느낌은 못 받음

5시 ~ :

비가 꽤 세차게 내리기 시작. 바람도 점점 심해짐


 짧은 자세 연습을 마치고 곧바로 조를 나누어 바다 안으로 보드를 들고 성큼성큼 들어갔다. 비가 점점 굵게 내렸지만 이미 물 안에 있으니 이래 젖으나 저래 젖으나 크게 상관없었다. 그것보다도 내가 보드를 타는 건지 보드가 나를 타는 건지, 운동신경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터라 비를 맞고 있다는 걸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적당한 깊이까지 보드를 밀고 들어가 강사님 지도 아래 보드에 올라 배웠던 부분 동작을 차례차례 연결시켰다.

(물론 머리로는 '상체를 들어 올린 후 왼발을 앞으로 당기고 뒷발을 디디며 짠! 하고 일어나는' 연결 동작을 이어나갔지만, 몸은 이 프로세스를 따라가지 못해서 바닷물이 아주 짜다는 걸 새삼스레 체험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일어날 테다, 라는 각오를 다지며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같이 강습받은 여성분이 인상깊은 한마디를 들려 주셨다.


비 맞으면서 바다에 들어와 있으니까 기분 너무 좋지 않나요?


 여행지 날씨가 악천후라도 그거마저 좋은 게 좋은 거란 마음가짐이 좀 더 묵직한 쐐기처럼 뇌리에 박혔다. 말을 듣고 보니 오기 전, 양양 지역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날씨가 부디 좋길, 특히 비가 안 내리길 바라고 또 바라던 날 떠올렸다. 비가 안 온다고 한숨 돌렸다가 빗방울이 굵어지니 그게 또 은근히 신경 쓰였다. (날이 안 더워서 서핑하기 좋다고 할 땐 언제고...) 물가 밖에서의 실외 스포츠를 발작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는 땀에 몸이 젖는 걸 혐오하기 때문이다. 물에서야 땀이 나도 그걸 못 느끼니 그나마 수영은 신나서 배웠고 이번에 서핑도 큰 거부감 없이 따라온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은 비를 맞아도 된다며, 굵어지는 빗방울과 넘실대는 파도에서 튀어 오르는 바닷물 세례를 그거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야외 강습을 마치고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서프보드와 한 몸이 된 느낌이 됐...다고 하기엔 처음 서핑을 배운 터라... 위 사진처럼 상체를 세우는 '푸시' 자세에서나 안정감을 느낄 뿐 한껏 끌어와도 모래알만 한 운동신경의 소유자로서는 발을 디디고 보드에 서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5시 이후부터는 프리 서핑 시간이라 5시 전, 강사님이랑 있을 때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보드를 딛고 일어서 보는 게 소소한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 결과는? (두구두구)


얼마나 버텼는지는 묻지 마시길... 일단 일어났으니 목표는 달성!


 일어설 때 왼발, 오른발을 차례차례 앞으로 끌어와야 하나, 마음이 급한 나머지 두 발을 동시에 가져오려다 첨벙, 발을 당기는 타이밍이 엉켜 보드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멍..., 부분 동작을 하나씩 천천히 해보자 마음먹고 출발했더니 보드가 모래사장에 닿을 즈음에서야 엉거주춤 일어나서 이걸 일어났다고 하기도 애매한 시행착오만 연거푸 해댔다. 그러다 어찌저찌 엉거주춤 비틀비틀 일어나긴 했고 일행 중 한 명이 그럴듯하게 인증샷까지 남겨준 덕분에 소기의 목적 '한 번이라도 보드 위에 서기'를 달성했다고 나름 떵떵거릴 수 있게 되었다.


 그사이 남부에서 이미 한 차례 물 폭탄을 휘갈긴 비바람이 어느새 강원도 일대까지 접근했는지 바람도 꽤 세지고 비도 맞는 걸 즐길 정도의 빗줄기가 아닌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악천후에 꽤 스트레스를 받던 마음가짐에 조금 여유를 가지자던 생각도 퇴수 후 몰아친 악천후와 벌어진 해프닝에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데...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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