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욕고불만 10화

(7) TAIS-TOI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

by Fernweh

TAIS-TOI / TAISEZ-VOUS


머릿속에 실타래가 엉킨 ‘타레(Taré)’ 단계를 지나며 솟아오른 프랑스어 자신감은 현실의 벽에서 잠시 주춤했다. 예정대로라면 전역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났어야 했으나 덜컥 취업이 먼저 되는 바람에 유학의 꿈을 접었다. 일단 입에 풀칠을 하고 봐야 그 입에서 불어를 내뱉을 수 있을 테니 경제적 현실에 날 맞추는 게 우선이었다. 유학을 곧바로 떠났다면 그때 그 자신감도 고스란히 지켜낼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어도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식욕을 채우니(입에 풀칠하니) 이차적인 욕구로 시선이 갔다. 부자가 되려는 욕구가 아니라 입에 풀칠하고 남은 돈으로 취미생활을,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음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때면 어깻죽지가 삐거덕거리는 걸 느끼곤 했다. 원래 어깨가 안 좋은 편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써 감춰둔 ‘프랑스어 자신감’이란 어깨 뽕이 관절에 맞물려 삐거덕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취미나 문화생활로도 충족할 수 없던, 프랑스어를 더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생겨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미련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평생 내 발목을 붙잡을 미련.


파리로의 어학연수를 결심한 후,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다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어깨 안쪽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프랑스어 ‘뽕’을 조금이라도 꺼내 놓아야 파리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테니까. 한국에서 양어깨 위에 장착했던 프랑스어 뽕은 어학원 수업 첫날, 실력 테스트에서 글자 그대로 ‘뽕’하고 터져 버렸다. 다행히 한국에서처럼 책이랄까, 어떤 매체를 통해서만 불어를 익힌 게 아니라 일상의 매 순간을 프랑스어에 둘러싸인 채 불어를 익혀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터져버린 뽕을 수습할 수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어학연수 3개월째부터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불특정 다수의 현지인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말하기-듣기에 특화된 환경이라 금상첨화였다. 몸이 고단할 때도 한마디라도 더 해보겠다며 손님들에게 입을 열어 댔다. 상대방이 틀린 부분을 꼬치꼬치 지적하는 어학원 선생님이 아닌 일반인이라 수업 때보다도 더 열심히 말을 붙였다. 분명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섞여 있었을 내 프랑스어를 단 한 번의 지적도 없이 기꺼이 들어주던 이들이었다. 실타래가 엉키던 시절은 이미 까맣게 잊었고, 충만한 자신감은 어깨를 넘어 정수리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십 분 정도 일찍 오라고 호출했다. 컴플레인이 있었다면서. 이전에 몸담았던 업계에서 컴플레인에 단련될 만큼 단련되었고, 프랑스에서 요구되는 서비스 마인드가 우리나라에서만큼 심하지 않단 걸 체득했기에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컴플레인은 달랐다. 날 긴장시키고야 말았다. 컴플레인이 겨눈 게 내 서비스가 아닌 어학 실력이었기 때문. 어학원도 아닌 곳에서 프랑스어 지적을 받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명령문을 자꾸 쓰는 게 퍽 기분이 나빴다더라


문제는 명령문을 대하는 시각이었다. ‘앉아’와 ‘앉으세요.’ 누가 봐도 전자는 반말, 후자는 높임말이다. 아무리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라도 종업원이 손님에게 자리를 가리키며 ‘앉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 당연히 상냥한 톤으로 ‘앉으세요’라고 했고.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두 문장 모두 프랑스어 화법상으론 ‘명령법’을 사용하는, 그게 손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assieds-toi / asseyez-vous) 지금이 뭐 조선 시대랄까 ‘짐이 곧 국가’였던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대도 아니니 상전에 무릎을 앉으며 이곳에 ‘앉으시옵소서’라고, 사극에서나 들을 법한 극존칭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극존칭이랄 것도 없다.


우리말에 있는 높임말의 개념이 프랑스어에는 희박하다. 인사만 봐도 우린 ‘안녕’, ‘안녕하세요’를 상대에 맞춰 달리하지만, 프랑스어는 ‘bonjour’ 하나로 다 통한다. 우리말보다 희박할 뿐 존칭의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당신’에 해당하는 인칭(vous)으로 동사를 활용하면 존댓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식으로 뱉은 말이 프랑스어의 앉으세요, ‘asseyez-vous’였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내게 ‘앉아’, ‘앉으세요’ 두 문장은 청자에게 명령하는 화법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반말과 존댓말의 개념으로 먼저 다가왔다. 반대로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그 손님은 존댓말을 듣는 게 아닌, 자기에게 앉으라는 명령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프랑스어 화법에 우리말 존칭 개념을 적용해 존댓말하고 있다고 나만 착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사실 프랑스인은 높임말에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말 자체에 존칭의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 대충 동년배로 보인다면 초면인 사이에서도 바로 반말을 한다. ‘당신’이란 인칭을 쓰지 않고 ‘너’라고 부른다는 의미다. “너라고 부를게”라며 한국 누나들을 설레게 한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가 불어로 번안되었어도 불란서 누나들에겐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이미 보자마자 너라고 부르니까. 당시 컴플레인을 한 손님은 주에 서너 번은 식사하러 오던 나이가 지긋한 노파 단골이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에 비해 말을 깐깐하게 받아들인 거라고, 단골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며 너무 심각하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했다. (5화에 이야기한 그 표현이 여기서도 쓰였다!)


한껏 부풀어만 가던 프랑스어 뽕에 바람이 슉-하고 빠지는 기분이었다. 모국어가 다르기 때문에 말을 받아들이는 직관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단 걸 처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고. 초·중급 단계에서 고전하며 풀어댄 실타래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면, 그 이상의 수준에서 마주하는 실타래는 눈에 보이지 않아 어디가 엉켜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었다. 그래도 사장님의 위로는 힘이 되었다. 외국인이니까 프랑스어를 제대로 못 한다고 지레짐작하여 아무 지적을 안 한 거보다는 프랑스인이라 여겨 말꼬투리를 지적받는 쪽이 더 좋은 거라는 위로 말이다. (좋아해야 하는 거... 맞죠?)


그나저나 이번 이야기에는 욕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 이야기라면서 궁금한 욕은 안 알려주고 뭐 하냐고 컴플레인 할 수 있으니 표제의 뜻을 이제 알려드리겠다. 바로 ‘닥쳐’, ‘닥치세요’ 이다. 그나마 우리말 개념으로 존댓말 ‘닥치세요’가 속된 정도를 좀 희석하려나. 닥치라는 말 자체에 존칭 개념을 섞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다. 불어에서 상대를 높일 때 쓴다는 ‘당신’이란 인칭은 2인칭 복수 인칭대명사(너희들)이기도 한데, 여럿이 모인 상대에게 쓰면 ‘너희들 닥쳐’라고 반말이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반말로도 존댓말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려면 조건법이란 문법을 꺼내 들면 되지만, 프랑스어 학습서가 아닌 만큼 여기선 다루지 않는 걸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