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욕고불만 11화

(8) ÇA M’ÉNERVE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8)

by Fernweh

ÇA M’ÉNERVE [싸 메네ㅎ브]


앞서 생략했던 조건법 문장을 우리말로 쓰자면, “이쪽 좌석이 선생님께 괜찮으실까요?”이다. 확실히 ‘여기 앉으세요’보다 말을 하는데 품이 많이 든다. 언어의 경제성에 역행하는 꼴 아닌가.


명령문 남용 사건 때문에 십 분 일찍 왔다고 하소연하니 프랑스 친구는 하나같이 간이 참 애매하게 안 맞는 국물을 떠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확실히 컴플레인을 한 손님보다는 언어 사용에 유연함을 두고 있었다. 심지어 손님에게 자주 명령문을, 그것도 동년배로 보이는 손님이나 얼굴은 튼 단골에겐 반말체까지 서슴없이 선보였으니까. “이쪽으로 와”, “따라와”, “들어와”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들도 자기보다 윗세대의, 올바른 자국어 사용을 위해 깐깐한 잣대를 들이미는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어처구니없는 항의를 받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공감과 안타까움이 반반씩 섞인 밍숭맹숭한 표정을 지어 보인 걸지도 모른다. 외국어를 알면 알수록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오묘한 뉘앙스 차이 때문에 간혹 짜증 날 때가 있다. 심화 문법을 파고 들어간답시고, 전문 영역에서나 쓰일 법한 고난도 어휘를 달달 외워보겠답시고 머리를 싸매네, 어쩌네 해봤자 알 수 없는 영역은 존재한다.


바로 위 문장에 세 글자를 굵게 처리한 이유를 알아채셨는지. 프랑스어로 ‘짜증 나!’란 말의 발음은 ‘싸 메네ㅎ브!’다. 회심의 일격 같은 언어유희에 무릎을 탁-! 치셨길 바랄 뿐이다. 혹은 코웃음이 피식 나오는 말장난에 짜증이 훅-! 나셨다면 그건 또 그대로 이번 글의 주제와 잘 맞으니 웃어넘기기로... 비속어까진 아니지만 비속어가 나올 법한 상황에 잘 어울리는 감정 중 하나는 단연 짜증이니 표제어로 선정해 보았다.


이 표현은 직역하자면 ‘그것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이다. 어찌 됐건 짜증이 난다는 건 그럴만한 상황에 처했거나 그럴만한 대상이 있다는 것이니 그게 날 짜증나게 한다고 말하나 짜증난다고 말하나 별반 차이는 없다. 근데 이상하게 우리말로 “짜증 나!”라고 말하면 짜증이 쌓이는 듯한 반면, 프랑스어로 “Ça m’énerve !”라고 말하면 차오른 짜증을 시원하게 뱉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성대를 긁는 ‘R’ 소리가 가운데 끼어 있어서인지, 다른 곳보다 ‘메네’ 부분을 좀 더 힘주어 발음하게 되는데, 그 덕에 목 언저리에 걸친 짜증을 긁어서 뱉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아직 ‘R’ 발음이 어려운 불어 학습자라면 발음하는 거 자체가 짜증나려나.


소리도 소리지만, 문장 구조도 짜증을 본인에게서 덜어내는 형태라고, 조금의 억지를 붙여본다. ‘짜증난다’는 능동 표현이니 저 스스로 없던 짜증도 끌어모아 내는 이미지라면, ‘그게 날 짜증나게 한다’는 피동 표현이라 짜증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내가 아닌 외부의 어떤 것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우리말 표현에선 주어가 생략됐지만, 문맥상 짜증이 나는 주체는 나일 수밖에 없으므로 애써 주어를 감췄어도 짜증은 자기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책임을 떠넘기는 거라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짜증이야 다른 곳으로 훨훨 털어버릴 수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노릇 아닌가.


운이 좋게도 내가 다니던 어학원은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였다. 아침 10시 수업이었는데, 아침 9시 55분에 일어나도 지각할 일이 없는 거리였다. 물론 그 시간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와 세면은 포기해야 했지만, 통학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면 수업 첫 시간을 통째로 날리는 셈이었으니 공복과 기름진 안면 정도의 기회비용은 손해 보는 비용 축에도 못 끼었다. 큰 비용이라 할 만했던 건 떡진 머리였다. 워낙 수염이 빨리 자라 하루만 면도를 안 해도 인중과 턱 주변이 거무튀튀해지는데 난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면 면도를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면도 좀 하라고 아우성을 쳐도 그러거나 말거나 뻔뻔 그 자체인데, 머리를 두고선 차마 뻔뻔해질 수가 없다. 전날 저녁에 머리를 감고 자도 다음 날 아침이면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머리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반곱슬이어서 그런 건지, 두피가 지성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머리를 감지 않고는 아무 데도 나갈 수 없다는 강박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은커녕 두피가 지성이면 감당 불가다. 9시 55분에 눈을 뜬 저 날, 머리 감기 대신 후드티 입기를 선택했다.


메두사 머리 마냥 뒤죽박죽 솟아오른 머리를 애써 후드로 감추고 교실에 들어간 날 보자마자 선생님은 왜 후드를 쓰고 있냐며 얼른 후드를 벗으란다. 늦게 일어나서 머리를 못 감았다고 말했지만 통하지 않는 변명이었다. 선생님은 후드를 쓰는 게 감지 않아 더러운 머리털을 보이는 거보다 흉하게 보고 있었다. 후드를 쓰느냐 마느냐, 이게 뭐라고 수업 댓바람부터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며 깨달은 바는 후드를 쓴 모습이 프랑스에선 으슥한 골목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양아치나 부랑자에게나 어울릴 모습으로 비치는 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실이란 신성한 장소에 그런 불경스러운 모습을 들이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한 쪽은 내 쪽. 어학원으로 오는 5분, 선생님과 실랑이를 하는 5분 동안 그나마 후드가 뻗친 머리를 눌러 주어 아주 조금은 점잖은 모양새로 수업을 들을 수 있던 걸 위안 삼아야 했다. 선생님만 유독 후드를 쓰고 다니는 젊은이를 안 좋게 보는 건 아닐까, 선생님 개인의 생각을 프랑스인 전체의 생각이라 부풀린 건 아닐까. 근데 심심치 않게 머리를 감지 않고도 후드든 캡 모자든 아무것도 쓰지 않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프랑스인이 많다는 걸 깨달을 때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걸 느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쌔고 쌨는데, 고작 후드를 쓰고 있을 수 있냐 없냐 따위의 고민은 하등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어쩌면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하고 싶다며 치는 발버둥도 어쩌면 처음부터 날을 세워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을 수 있다. 양 국적의 부모를 다 둔 환경에서 자연스레 두 언어를 모국어로 체득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어의 직관으로 프랑스어의 직관까지 넘보는 건 무리다. 나는 안 감은 머리를 참을 수 없지만, 프랑스인 선생님은 후드 쓴 모습을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존댓말이라고 예를 갖춰 말한 건데, 프랑스인 손님은 자기한테 명령을 지껄인 거로 받아들인 것처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영역은 우리 안에서 비롯된 게 아니니 ‘짜증 나’라고 짜증의 주체가 되려 하지 말고, 그게 날 짜증나게 한 거라고 초탈하는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언어에 관한 일화와 일상에 관한 일화를 빗대며 글을 쓰려니 뭔가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온 기분이 들지만, 외국어를 배우고 쓰는 데 있어 사소한 실수나 불필요한 완벽에의 집착을 둘둘 싸매지 않고 좀 더 일찍 ‘싸메네ㅎ브!’하고 뱉어냈으면 좋았겠단 생각에 두 일화를 연관 지어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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