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어 წყალი n. 물
여행갈 때 꼭 외워가는 현지 언어 단어는 ‘물’이다. 무턱대고 타지에서 수돗물을 마시기엔 께름칙하니 생수를 사 먹는데(우리나라처럼 정수기가 잘 있지도 않고), 조지아에서는 조지아어로 물을 사 먹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츠, 깔, 리.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될 발음이 없다.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자면 처음 치읓도 ‘쯧’하고 혀를 차는 느낌으로 말해야 한다지만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깔의 쌍기역. 도대체가 어떻게 발음하는지 가늠조차 안 되던 글자 ‘ყ’가 바로 그 글자다. 영어 y와 닮아서인지 저 글자는 ‘Why’ 저런 소리를 내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체코어 ř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격.
원어에 가장 가깝게 표기해 본 제목 발음기호 속을 보면 ‘깔’ 앞에 자음 ㅋ과 ㅎ이 나란히 있다. ㄲ발음에 ㅋ의 거센소리도 나고 ㅎ소리도 그냥 ㅎ음가가 아닌, 프랑스어 r 발음처럼 가래 뱉듯 내야 한다. 써놓고 보니 묘사하기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말할 때도 너무 어려운 발음이니, 차라리 한 번 찾아서 들어보는 게 이해하기에 훨씬 도움이 될 듯.)
저런 자음이 글자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호기롭게 성대를 긁으며 ‘츠ㄲ...’하고 소리를 내보다가도 매번 포기하고 ‘워터 플리즈~’하고 영어로 물을 주문했다. 영어가 안 통했다면 아마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다. 그 만큼이나 갈증을 느끼면 초인적인 힘이 나와 ‘츠(ㅋㅎ)깔-!!!리’ 하고 저절로 발음을 해낼지도 모르겠다.
발음이 어려우면 평소 잘 안 쓰이는 말에나 쓰일 것이지. 하필 ‘물’이란 단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게 뭐람. 투덜대던 중에 ‘ყ’가 들어간 또 다른 필수 단어를 만났다. 투덜거릴 시간에 발음 연습을 하라는 신의 계시인 걸까. 물처럼 생물학적으로도 필수인 요소는 아니지만 카페인이 떨어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 같은 인간에게 필수 요소인 커피였다. 조지아어로는 ‘ყავა’. (ㅋㅎ)까(v)바.
조지아어 자음은 스물여덟 자나 된다. 자음 하나당 예외적인 발음 없이 딱 한 가지 소리만 내게끔 되어 있어 자음이 굉장히 세세히 나누어져 있다. 그러다는 건 키읔 소리를 내는 자음이 많다는 것. 고집스럽게 커피란 단어에 ‘ყ’를 넣지 않아도 될 텐데. ‘ㅋ’(ქ), ‘ㄲ’(კ)처럼 좀 더 쉬운 발음을 넣어도 좋았을 텐데. 커피를 하루 두 잔은 마셔야 하는 나로서는 참 야속하게 느껴지는 발음이었다.
그래도 ‘츠깔리’보다 ‘까바’가 한 음절 적으니 커피 주문은 ‘ყ’ 발음을 넣어 도전해보려 했다. 이번에도 실패. ‘얼죽아’랍시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