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Stracciatella n.(맛) 스트라치아텔라
*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목에서만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발음을 표기했고 본문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작성했습니다.
옛 여행을 떠올려본다. 도시 하나가 상상의 프레임 안으로 쏙 들어온다. 장소와 시간, 배경과 사건이 프레임 안으로 섞이며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프랑스 파리, 저녁 아홉 시, 반짝거리는 에펠탑 앞, 샴페인 한잔.
라오스 루앙프라방, 새벽 다섯 시, 주홍빛 승복을 입은 승려들, 탁발.
대한민국 부산, 오후 두 시, 선명한 채도를 내뿜는 감천마을, 전망대에서의 조망.
이런 식이어야 하는데,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떠올린 프레임은 조금 달랐다. 부정적인 기억이 담긴 장소, 시간, 배경, 사건이 먼저 떠올랐다 사라진다. 시내 좁은 골목에 들이닥친 인파 때문에 몇 번이고 놀이공원 대기 줄 서듯 빠져나오던 장소. 느려 터진 운행 속도로 일정이 꼬일까 내 속 터지게 만든 수상버스 바포레토(vaporetto) 위의 시간. 그 시간을 견디며 도착한 몇몇 관광지의 유명무실한 배경. 들뜬 마음으로 찾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본 영화가 인생 최악의 영화였던 사건. 전부 프레임 뒤로 자취를 감춘다.
텅 빈 프레임을 웬 단어 하나가 대신 메꾼다. 스트라치아텔라. 우유와 크림 베이스에 가느다란 초콜릿 칩이 섞인 젤라토. 산 스타에(st.stae) 광장의 젤라토 가게에서 우연히 맛본 젤라토, 스트라치아텔라 한 스쿱이 도시를 덮은 실망감을 벗겨낸다.
베네치아 여행이 나쁜 추억만 남긴 건 아니다. 좋은 기억, 멋진 풍경도 많았다. 프레임 뒤에 비겁하게 숨은 싸가지 없는 저 4가지 녀석들이 차례차례 엄습할 때마다 산 스타에 광장에 가서 젤라토를 크게 한 스푼 떠 입에 넣었다. 그 첫 번째 스푼이 바로 스트라치아텔라였다.
처음 ‘산 스타에 젤라테리아(gelateria)’에 방문한 날, 스트라치아텔라 한 스쿱, 체리 맛 한 스쿱을 먹었다. 단연코 내 마음 속 ‘원픽’은 스트라치아텔라지만 여러 맛을 맛보고 싶어 다음 방문, 그 다음 방문 때는 다른 맛을 택했다. 베네치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에 올 때는 두 스쿱 짜리 말고 세 스쿱 짜리 컵에 스트라치아텔라만 담아 먹을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네 번이나 와서 익숙한 산 스타에 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 젤라토 가게에 도착했는데, 웬걸 휴무였다. 청천벽력이란 말이 이럴 때 튀어나오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맛 안 먹어보고 매번 스트라치아텔라를 먹었을 텐데... 다른 젤라테리아에서 스트라치아텔라를 먹긴 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였다. 내 ‘원픽’은 다름 아닌 산 스타에 젤라테리아의 스트라치아텔라였으니까.
파리에 살 때 ‘장미꽃’ 젤라토로 유명해진 젤라토 체인 ‘아모리노’에 자주 갔다. 그때도 어김없이 가장 먼저 고른 맛은 스트라치아텔라였다. 나중에 친구가 권한 바질 라임 맛을 맛보고 ‘원픽’ 자리를 내어 주긴 했지만, 베네치아 여행의 프레임은 여전히 스트라치아텔라로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