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roman)이 노망이 되기까지

프랑스어 complet a. 만실인, 만원인

by Fernweh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5)


프랑스어 Complet [꽁쁠레] a. 만실인, (좌석이) 만원인


‘로망’에서 자음 하나 바꾸면 ‘노망’이 된다.

처음 방문한 도시를 누비다 호텔 아무 곳에 들어가 방을 잡는 로망을

누군가 따라한다고 하면 노망났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극성수기 휴양지 도시에서는 말이다.


* 이번 편은 본문 속 언어유희를 살리기 위해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지 않고 실제 발음으로 표기했습니다.

* 니스는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뿐이라 표지는 생크로와(St-Croix) 호수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목적지: 프랑스 파리. 기간: 15일.

생애 첫 해외여행의 개괄은 이랬다. 파리에만 2주 동안 있자니 좀 싫증이 났을 때 운 좋게 저렴한 니스(Nice)행 TGV표를 구했다. 1박 2일 즉흥 여행 시작. ‘즉흥’이란 말이 붙으니 한 번쯤 봤음직한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우연히 찾은 도시에 반해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 여행자. 시내를 서성이다 괜찮아 보이는 호텔에 불쑥 들어가 방을 잡는 장면. 그 땐 왜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묘한 감상에 사로잡혔을까.


현장에서 바로 방을 잡아 숙박하는 건 어려울 일도, 문제될 일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극성수기인 7월 중순 여름에, 그것도 휴.양.지.를 간 것. 도착 후 둘러 본 니스는 도시 이름과 철자가 같은 영어 단어처럼 ‘나이스’한 곳이었다. 미술관, 구시가지, 지중해 바다, 전망대까지 나름 빠듯한 일정을 거친 후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시내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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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현대 미술관 / 시내 풍경 / 지중해 바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오늘 밤 방이 있나요?’ 불어 문장은 써보지도 못하고 호텔을 찾아 다녔다.(당시엔 프랑스어 초보자였다) 호텔 입구에 이미 ‘COMPLET’라는 큼지막한, 실제 크기는 작았지만 체감상 엄청 큰 표시가 걸려 있었기 때문. 두 번째 호텔, COMPLET. 세 번째 호텔, COMPLET.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COMPLET. 지금에야 모바일로 1분이면 당일 예약도 척척 한다지만 2008년의 실정을 달랐다. 로밍도 안 했었고. 말 그대로 ‘뺑뺑이’를 돌다 호텔이 보이면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호텔을 찾아 헤매던 2시간 동안 COMPLET 단어를 몇 번이나 봤는지. 니스란 도시에 ‘꽁’한 마음을 갖게 만들도록 작정했는지 첫 발음도 ‘꽁’인 애증의 단어 ‘꽁쁠레’. (프랑스어 OM 발음은 ‘옹’, 비음소리이다) OM의 M이 우리에게 친숙한 미음 발음으로 ‘꼼’하고 소리 났다면, 꽁한 마음 대신 숙소를 쉽게 찾는 ‘꼼’수를 부릴 수 있지 않았을까.


호텔에 쓰이면 ‘만실’, 방이 없다는 의미지만 다른 뜻으로는 완전무결하단 뜻도 가진 단어. 미리 숙박 예약을 완전한 상태로 ‘COMPLET’해 두지 않으면, 이미 만실이 된 ‘COMPLET’ 호텔만 몇 번이고 서성일 거란 예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단어, 꽁쁠레.



20080721221522_20179097_ksh4545.jpg 그때 찍었던, 겨우겨우 체크인했던 호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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