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13화

V.V, ㅅ.ㅅ

(12) MILANO

by Fernweh

MILANO


지난 화에서 이탈리아 도시를 등장시키며 ‘여운’ 운운했으니, 이국(伊國)의 여운이 가시기 전 밀라노 여행 이야기도 꺼낸다. 여행지로 자연이 아닌 도시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술관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생애 첫 여행이 미술관의 메카인 파리였기 때문일까. 미술에 무지했던 난 이제 어느 도시에 가든 꼭 미술관을 들른다. 밀라노도 미술을 보기 위해 찾은 곳이다. 이탈리아 회화의 보고라는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도 갈 예정이었지만, 비행기 표를 예매하도록 이끈 결정적인 장소는 ‘산타 마리에 델라 그라찌에(Santa Maria delle Grazie)’ 교회였다. 미술관 타령하더니 무교 주제에 갑자기 웬 교회 타령인가. 그 교회 안에 있는 한 작품 때문이었다.


<최후의 만찬>. 교회 안에 있다는 그 작품이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작품이니 밀라노에서 어딜 가냐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어디’라는 의문사로 물었으니 장소를 들먹여야 하지만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간다’고, 작품 이름을 거론하는 쪽이 듣는 이로 하여금 교회엔 왜 가냐고 질문을 또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해준다. 이름값을 하는 만큼 작품을 직접 보기도 여간 쉽지 않다던데, 출발 하루 전 사전 예약에 도전했는데도 한 자리를 구해냈다. 밀라노를 여행하라는 신의 계시다. 보통 비행기와 숙소부터 예약하고 일정에 따라 필요한 예매를 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순서가 정반대였다. 최후의 만찬 티켓을 거머쥐자마자 숙소, 비행기 표 예매를 일사천리로 해나갔다.


어쩌면 미술 작품이 자리하기에는 미술관보다 자연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작품 보존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훌륭한 작품에 내포된 오라를 미술관 건물 내부에, 그것도 다른 작품과 함께 놓는 건 결례라고 생각한 적이 종종 있다. 단적인 예가 <모나리자>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가 <모나리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 실망하는데, 크기가 유일한 실망의 원인은 아니다. 도떼기시장처럼 인파가 들끓는 좁은 공간에 놓여 다른 작품에 둘러싸여 있으니 조콩드* 여사의 위용이 묻혀버렸다. 사방이 탁 트인 자연의 일부로 녹아드는 게 이런 위대한 작품의 정수를 함축하기에 더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미술관 안에서 조도나 습도 등의 조건을 최적화했기에 지금 이 정도로 작품이 보존됐을 터. 마냥 바깥에 꺼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교회 안에 있었음에도 탁 트인 자연 속에 걸려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은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
*<모나리자>의 원제는 ‘La Joconde’(라 조콩드). 작품 속 여인이 ‘조콩드 부인’을 일컫는다.


교회 안엔 예약한 시간대별로 고작 삼십 명만 들어갈 수 있다. 큼지막한 교회 건물의 벽면 하나를 통째로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라 많아 보일 수도 있는 삼십 명은 ‘고작’이란 단어로 수렴된다. 건너편에 ‘예수의 십자가 고난(Crocifissione di Cristo)’이란 다른 작품이 있기는 하나 멀찍이 떨어져 있고 입장하는 순간 이미 <최후의 만찬>에 모든 시선을 빼앗기기에 낌새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한 존재감을 남겼다.


이들 중 한 명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


예수의 한마디에 만찬 자리에 함께 있던 십이사도가 동요한다. 성경을 읽은 적이 없으니 짧은 작품 설명으로만 얽힌 일화를 짐작해야 했다. 오직 <최후의 만찬>만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 주는 울림은 내 짐작을 드라마틱한 한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작품 뒤로 당시의 시대상이 펼쳐짐과 동시에 주변이 비슷한 채도의 웅장한 자연 풍경에 동화된다. 주위에서 작품의 감상을 나누려 속삭이는 말이 동요한 십이사도의 웅성거림처럼 들려온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연 풍경을 미술 작품을 보며 떠올리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상상 속에서 무한대로 확장하기 수월한 건 확실히 도시보다는 자연의 풍경이다. 마음을 울린 작품이 미술관이란 꽉 막힌 사각형 안에 놓이는 게 마뜩잖으니 광활하게 뻗치는 자연 속에 경이롭게 바라보던 작품을 놓는 건 아이러니일 수가 없다. 오히려 상상의 나래의 자연스러운 발로다.


<최후의 만찬>처럼 작품을 자연 속에 덩그러니 두는 상상을 하게 만든 또 다른 작품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 <수련> 전시실은 자연광만으로 조도를 조절해서 그 자체에서 자연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전시실이 흐려지며 작품 속 수련 연못 위로 그늘을 떨군다. 그럼 흐린 날의 수련 연못 풍경이 그림의 이면에 후광처럼 펼쳐진다. 이렇게 상상하며 작품을 보는 데 푹 빠져 오랑주리 미술관을 여섯 번이나 갔다. <최후의 만찬>은 사전 예매도 필수인 데다 한 차례에 딱 15분만 볼 수 있으니 밀라노에 살았단 한들 여섯 번씩이나 가진 못했을 거 같다. 그래서일까. <수련>이 불러일으킨 풍경은 가까운 곳에서 지친 나를 위로해주려 자그맣게 마련된 비밀 정원 같은 풍경이었고, <최후의 만찬>을 보고 떠올린 풍경은 큰맘 먹고 찾아가야 하는 거친 기암절벽 사이의 협곡을 닮은 풍경이었다.


여행을 다시 마음껏 떠날 날이 오면 한달음에 미술관에 찾아가리라. 마음에 와닿은 작품의 이면에 딱 어울리는 자연 풍경을 펼치는 상상을 하러.


그나저나 몸을 혹사하며 찾아가는 자연으로 여행을 가라면 '뭐라노?' 치를 떨면서 밀라노 같은 도시에 가서 편안하게 상상으로만 그리는 자연은 환영하는 걸 보면 답도 없는 도시 여행자가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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