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11화

V.V, ㅅ.ㅅ

(10) WARSZAWA

by Fernweh

WARSZAWA


첫인상은 부쿠레슈티와 비슷했다. 전망대가 있다는 문화과학궁전에 들러 시내를 조망하니 이 도시도 한때 공산주의가 스쳐 간 동구권이었음을 단번에 깨달았다. 특색이라곤 없어 보이는 네모반듯한 무채색 건물이 발아래 시내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칙칙한 분위기가 더 두드려졌다. 그나마 바르샤바도 부쿠레슈티처럼 구시가지가 칙칙한 도시에 감성 한 스푼을 더해주긴 했지만. 전망을 내려다보고 있는 문화과학궁전 건물도 소련의 공산주의 건축 스타일로 지어진 곳이라 괜스레 더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칙칙한 도시로 기억되는 부쿠레슈티와 달리 바르샤바가 끝내 잔잔한 여운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쇼팽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때의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폴란드 태생이다. 조국을 항상 그리워했으면서 폴란드가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을 때 목놓아 안타까워했다는 자국의 위인을 위로라도 하듯 바르샤바엔 그를 기리는 명소가 참 많았다. 쇼팽의 심장이 보관된 성 십자가 교회(Kościół Świętego Krzyża), 그의 생애와 예술적 업적을 망라한 쇼팽 박물관, 공원 입구에서부터 큼지막한 쇼팽 동상이 방문자에게 손짓하는 와지엔키(Łazienki) 공원 등. 시가지에는 ‘쇼팽 벤치’라는 게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는데 버튼을 누르면 그의 음악이 재생되는 의자였다. 깨알 재미까지 쇼팽이 선사해주는 쇼팽에 의한, 쇼팽을 위한 도시. 나처럼 쇼팽 애호가가 원체 많으니 쇼팽 콘텐츠를 미끼로 관광객에게 ‘샤바샤바’ 하려는 도시가 바르샤바가 아닌가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


‘이 양반이 또 개그 욕심을 부리네’라며 한숨 짓지 마시길. 바르샤바에 갔던 타이밍은 영 석연찮았다. 구시가지는 정중앙의 광장 전체가 공사 중이라 칙칙했던 첫인상을 만회하려다 말았고(아까 감성 한 스푼을 더해주었다고 했는데 정말 딱 한 스푼만이었다) 와지엔키 공원 안의 궁전마저 공사 중이라 멀찍이 외관만 봐야 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바르샤바에 머문 하루하루에 남은 기억은 온통 쇼팽뿐이라서 이 도시가 작정하고 쇼팽한테든, 쇼팽을 좋아하는 이에게든 ‘샤바샤바’하는 거라고 농담을 던진 것이다.


아직 내 귀에는 자연의 소리보다 하나의 작품으로 잘 다듬어진 음악의 소리가 더 듣기 좋다. 짓누르는 더위를 잠깐이나마 식혀줄 여름철 계곡의 소리, 계곡 너머로 햇살을 내어주는 잎새 사이에 바람이 스칠 때 나는 소리, 그 잎새가 사방을 오므린 채 낙엽이 되어 떨어져 밟힐 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낙엽이 사라진 자리에 깔린 새하얀 눈이 자아내는 뽀드득 소리 등. 날 것 그대로 자연으로부터 생동하는 소리가 싫진 않지만, 무해하기 그지없어서 잠깐 들어도 금세 지겨워진다. 쇼팽 에튀드같이 몇 분 내로 기승전결을 확실히 보여주는 정제된 음악은 자연의 소리와 달리 지겨울 틈도 주지 않고 귓속으로 휘몰아친다.


입맛도 모자라서 귓맛까지 자극적인 걸 찾던 날 잔잔하게 다독여 준 건 바르샤바 시내 산책이었다. 쇼팽 벤치에서 흘러나온 야상곡에 홀려 밤 산책 내내 이어폰에서 흩뿌려지듯 안단테로 연주되는 야상곡 9번 2악장을 음미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평소 즐겨 듣던 에튀드도 그나마 잔잔한 ‘이별의 곡’(Op. 10 No. 3)을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튿날 찾은 쇼팽 박물관에서 들었던, 폴란드 춤곡이 그 원형인 폴로네즈는 춤곡이란 특징과 어울리지 않게 구슬프게 들렸다. 전날 밤 산책의 긴 여운 때문이려나. 쇼팽에 동화돼 조국을 그리워하던 그의 마음을 어설프게나마 이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전날의 잔잔함과 이날의 애틋함이 싸늘하기만 했던 도시의 인상을 반전처럼 뒤엎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차우셰스쿠가 아닌 쇼팽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여전히 전자의 도시는 칙칙하게, 후자의 도시는 잔잔하게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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