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TOKYO
도시로 떠날 때의 설렘 중엔 낯익은 일상을 낯선 곳에서 누려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 도처에 널린 스타벅스를 외국 도시에서 가서까지 가는 건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를 사려는 게 아니고,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그 나라의 글자로 적힌 메뉴판에서 찾아내어(영어가 병기돼 있어 무엇이 ‘아아’인지 찾기 어렵지 않다) 주문하고, 그곳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마시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다.
한 도시에 최대한 오래 머무는 편이라 이런 소소한 낙은 생각보다 쉽게 지루해진다. 물론 여행 온 이유의 전부가 일상을 타지에서 누려보는 게 아니기에 중간중간 관광지도 다녀오고, 미술관도 둘러보는 등 느슨해지는 여행의 탄력을 팽팽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탄력을 잃은 도시라면, 굳이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는 없다. 도쿄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이기도 하다.
서울과 도쿄. 바로 떠오르는 두 도시의 이미지가 너무 비슷했다. 넘쳐나는 도쿄 여행 사진을 뒤적여 봐도 서울이랑 비슷한 거대 도시 따위로만 보였다.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는 소소한 낙도 도쿄에선 기대하기 힘들었다. 후쿠오카를 훑고 오던 여행기, 떠오르시는지. 후쿠오카만 해도 열 번 다녀왔고, 다른 일본 도시도 많이 다녀온 터라 한국에서의 일상에 일본풍의 색채를 입히는 건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일상 너머의 외관이라도 루앙프라방처럼 이국적이어야 조금이나마 흥미가 생길 텐데, 외관마저 흡사하니 흥미는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기어이 도쿄를 간 건 친구 때문이었다. 학업으로 도쿄에서 5년 넘게 살았던 친구가 날 설득했다. 친구도 도쿄나 서울이나 다를 바 없다는 데에 공감했는지 관광 코스를 읊어 주거나 하진 않았다. 내 흥미를 끈 건 관광이라기엔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루틴이었다. 친구가 살던 동네를 찾아가 단골 가게에서 밥을 먹고, 교수님도 찾아뵐 겸 다녔던 학교에 가서 일본 대학교 구경도 하고, 마음이 지칠 때면 찾던 온천에서 느긋하게 온천욕을 하는 일정. 굳이 분류하자면 동네 여행이라고 있어 보이게 포장할 수야 있겠지만, 도쿄에 처음 온 이가 관광지는 다 내팽개치고 느닷없이 동네 탐방을 한다는 건 희한해 보일 법도 하다. 모두가 트래킹으로 찾는 카즈베기를 일일투어로 다녀온 이력이 있는 나라서 이번에도 희한한 고집을 부리기로 했다. 친구 따라가라는 강남은 안 가고 도쿄를 갔다.
도쿄에서 어디 다녀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일정을 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면 방문한 곳 이름 정도야 기억하겠다마는, 친구만 따라다녔기 때문에 이름조차 기억해낼 수가 없다. 내 기억 속 도쿄 여행지는 친구가 다녔던 대학, 친구가 살던 동네의 단골 식당과 빵집, 작은 워터파크처럼 꾸며진 도쿄 외곽의 온천으로 남아 있다. 시부야, 신주쿠 같은 동네 이름도, 도쿄 타워, 센소지 같은 명소도 아닌 채로.
친구의 추억을 찾아 떠난 여행은 새삼스러운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학교, 동네 상점, 근교 목욕탕쯤이야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주체가 ‘내’가 아니라서 새삼스러웠다. 내가 아닌 친구에게 익숙했고, 내가 아닌 친구가 그리워한 장소였으니까. 비록 주체는 내가 아니지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인지라 내 도쿄 여행 한 단락을 채운 친구의 추억 여행은 편안하게 읽혔다. 도쿄 여행 내내 내가 살던 동네, 다니던 학교, 드나들던 단골 가게를 향한 향수가 어렴풋이 피어났다.
서두에서 밝혔듯, 내 여행에는 낯선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여행의 하루하루가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더라도 그 맥락은 낯설어야 한다. 하다못해 외국어로 된 간판이라도 있어야 여행 온 기분이 난다. ‘추억’, ‘향수’ 따위의 키워드로 공감은 쉽게 했지만, 쉬웠던 만큼 추억을 곱씹는 당사자가 아닌 내게는 따분할 수도 있는 일정이었다. 친구가 용케 눈치라도 챘는지, 예상과는 거리가 먼 것들로 디테일을 채워 넣었다. 단골 식당에서 먹은 음식은 뜬금없게도 ‘하이난 치킨 라이스’라는 싱가포르 요리였다. 굳이 일식을 찾아 헤맨 건 아니지만, 굉장히 의외의 메뉴여서 놀랐다. 온천 역시 자주 다녔다길래 동네 어귀의 센토(銭湯, 대중탕)를 떠올렸는데 웬걸, 워터파크의 느낌의 소규모 테마 온천이었다. 학교야말로 ‘아, 일본 대학교는 이렇게 생겼구나.’ 말고는 볼거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사진학과에서 마침 사진전을 열고 있어서 캠퍼스 구경에 덤으로 전시까지 보게 되었다. 우연이 만들어낸 재미가 알알이 박히던 여행이었다. 아, 어쨌든 친구가 계획을 짜 놓았으니 우연이라 하기엔 필연에 가까우려나.
친구보다 이틀을 더 도쿄에서 머물렀다. 친구가 떠나고 나서야 도쿄 여행 정보를 알아보았다. 그래도 도쿄에 왔으니 센소지는 가보기로 했다. 거대한 등이 문 한가운데에 떡하니 매달린 센소지의 대문, ‘카미나리몬(雷門)’을 보러. 호텔을 나선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행의 흥미가 뚝 떨어졌다. 일단 7월 말의 도쿄는 그야말로 노천 습식 사우나였다. 에어컨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바깥 공기에 닿는 순간, 피부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주르륵 흐르고 마는 땀이. 더위에 혹사당해 입맛까지 잃을 지경이니 뻔한 관광지를 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옛 추억이 얽힌 장소도 아니고, 사찰이야 교토에서 크기별로, 종류별로 섭렵했기에 향수도 기대도 우러나지 않았다.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분명 덥고 습했다. 기상 이변이 잦아지고 있다 해도 하루아침에 미친 듯이 덥고 습해지지는 않는다. 전날까지 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던 건, 관광객처럼 작정하고 어떤 명소를 찾아가려 애쓰지 않고 현지인처럼 한가로이 동네나 한 바퀴 산책하고자 했던 여유를 지닌 덕분이다. 여행하러 와서 원래의 일상을 현지인처럼 겪어보려는 고집스러운 내 여행 취향에 잘 맞는 여유였다.
언젠가 한 친구가 도쿄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자연보다 도시를 여행하길 좋아한다는 말 속의 도시를 ‘대’도시로 이해했나 보다. 나도 서울처럼 복잡하고 사람 많은 대도시를 선호하진 않는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시를 좋아한다면서 너무 번잡한 도시는 또 싫다니 까다로운 녀석이라고 속으로 욕했으려나. 아마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터. 여행에 대한 내 고집이라면 고집 혹은 까다로움이라면 까다로움에 대한 변명을 도쿄 여행기를 통해 넌지시 드러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