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16화

V.V, ㅅ.ㅅ

(15) NOVI SAD

by Fernw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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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 SAD


친구 따라 강남, 아니 도쿄를 다녀오더니 이번엔 친구의 친구를 따라 이름조차 생소한 세르비아의 노비사드를 다녀왔다. 예정에 없던 도시였지만 친구는 베오그라드로 가려는 날 끈질기게 설득했다. 몬테네그로로 넘어가는 항공편을 예약한 터라 세르비아를 여행할 날은 한정돼 있었다. 일정의 절반은 친구의 고향인 ‘수보티차(cуботица)’에서, 나머지 절반은 수도인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에서 보낼 계획이었다. 나라부터가 생소하다 보니 덜컥 지방 소도시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도이기도 했지만 NATO 공습 같은 비극의 역사 때문에 한 번쯤 들어 본 베오그라드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나마 수보티차는 친구의 고향이라 도쿄 여행처럼 추억 여행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나서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친구, 그것도 나와는 초면인 외국인이 한 명 산다는 이유로 듣도 보도 못한 도시에 한정된 여행 일자의 절반의 절반을 내주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내 MBTI의 시작은 내향을 일컫는 ‘I’이다. ‘I’로 분류된 채 글을 쓰고 있는 이 아이는 그만큼 낯가림이 심하다. 여행을 빌미로 해외에서는 ‘E’인 척을 하지만,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의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즉흥으로 방문한 낯선 도시가 어색할 새도 없이 좋아지는 경우야 허다하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밀물처럼 밀려오는 어색한 기류가 쉬이 사라지는 경우는 희박했다. 그런 기류 속에서 친구도 아닌 ‘친구의 친구’의 추억을 좇는 여행을 하려니 탐탁지 않았다. 차라리 혼자 노비사드에 가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게 나을 성싶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음이 맞아 나나 너나 모두가 모르는 도시를 둘러보는 어색함을 차라리 원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 낯가림을 역이용했다. 노비사드에 가길 줄곧 거부하니 날 설득할 최후의 주문을 걸었다.


“베오그라드 가는 날에 친구도 시간이 비어서 같이 여행할 수 있대!”
즉, 언젠가는 만난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한 번은 얼굴 맞대고 어색함을 깨부숴야 한다. 가고 싶어 했던 베오그라드에서 어색함에 몸부림치느니 노비사드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가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노비사드야 예정에도 없던 도시이니 어색함에 휘말려 여행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되어도 크게 아쉽지 않을 테니까.


친구의 주문에 홀렸다가 눈을 떠 보니 노비사드행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정방향 좌석이었지만 역방향에 탄 기분이었다. 여행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심경의 변화가 도쿄 때와는 역방향이었기 때문. 전혀 색다를 게 없어 보여서 한 줌의 관심조차 주지 않다가 친구의 과거 일상을 파헤치며 색다름을 찾아낸 곳이 도쿄라면

, 따지자면 생판 남인 사람의 일상을 여행에서 만나려니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다가 막상 기차를 타니 어느 여행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도시를 만난다는 설렘이 찾아온 곳이 노비사드였다.


평범하지 않은 여행자 코스프레를 했지만 내게도 뻔한 관광객 심리가 작용했다. 관광지가 아닌 로컬의 속살을 보길 원한다면서 관광 명소부터 떠올리는 걸 보면 말이다. 노비사드를 가자는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 ‘거기 뭐가 있는데 가자는 거야?’라는 뉘앙스가 친구에게 전달된 건지 두 친구는 제일 먼저 도시의 가장 큰 관광지인 ‘페트로바라딘(Петроварадин) 요새’로 이끌었다. 그러고 나서 둘러본 곳 중에 관광지로 분류되는 곳은 없었다. 또 다른 친구의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에 갔고, 시내 어딘가에서 열린 플리마켓을 구경했고, 자주 온다는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낮에 갔던 페트로바라딘 요새 같은 도시의 명소를 더 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러다 문득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갤러리가, 플리마켓이, 칵테일 바가 관광 명소처럼 느껴졌다. 도시 자체가 낯설어서, 이름만 들어서는 모습이 어떨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추측해내기 힘든 생소한 곳이라서 평범한 장소도 내게 특별한 장소처럼 다가왔다.


“도쿄 가서 뭐 했어?”
“거기 살던 친구 만나서 단골 식당 가서 밥 먹고 살던 동네랑 대학교 구경했어.”


“노비사드 가서 뭐 했어?”
“거기 사는 친구를 알게 돼서 같이 갤러리도 가고 저녁엔 바 가서 칵테일도 한잔했어.”


도쿄는 가보지 않았더라도 비교적 잘 알려진 도시다 보니 많이들 갸우뚱할 것이다. ‘도쿄까지 가서 친구가 살던 동네를 구경하고 왔다고?’, 라면서. 두 번째 대화는 노비사드가 어느 나라의 도시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만큼 낯선 곳이라서 그럴듯한 관광지가 아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갤러리와 바에 간 게 전부라 해도 그럴듯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선 기운이 있어야만 여행할 힘이 생동한다는 나만의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여행은 없다. 저녁이 사라지는 북유럽의 백야 때나 별 볼 일 없는 여행이 가능하려나. 이미 공해 때문에 별을 볼 수 있는 도시는 손에 꼽는다. 그런데 그런 도시에서마저, 백야 때마저 우리는 기어이 별 볼 일 있는 여행만을 하려고 애쓴다. 관광지, 유명 맛집과 카페, SNS 인증샷 명소 등 구글맵에 찍어 둔 별 덕분에 백야와 공해에 진짜 별이 가려져도 매 순간 별 볼 일 있는 여행을 한다. 노비사드에도 도쿄에도 별은 없었다. 애초에 지도에 별 달기를 귀찮아하는 나조차도 두 도시 동네 어귀의 식당이나 바에 별은 찍지 않았다. 그래서 별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여행은 별똥별 꼬리를 닮은 매끈하고 긴 여운을 남겼다. 수년 전 친구가 빚었던 도쿄에서의 일상이 내게 특별한 여정을 빚어냈듯 초면이라 어색한 친구와 함께한 노비사드의 하루는 내게 낯설도록 묘한 여행을 선사했다. 아니, 낯설어서 묘한 여행을.


눈에 보이는 별이 없어도, 모바일 지도에 찍은 별이 없어도 여행은 별 볼 일을 만들어낸다. 무공해 청정 지역에 가야만 별을 볼 수 있는 슬픈 현실을 자각하니 나 같은 도시형 여행자에게도 별 볼 일을 만들어 주는 도시 여행의 인심이 참 고맙다. 마음에 드리우는 별똥별 꼬리를 닮은 여운을 좇으려고 자꾸만 여행을 가려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두 도시에서 함께 해 준 친구들도 별 볼 일 없던 일상이 낯선 이와의 동행을 통해 별 볼 일 있는 하루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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