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18화

V.V, ㅅ.ㅅ

EPILOGUE

by Fernweh

(이전 '가고시마' 편에 이어지는 에필로그)


고요한 전망대의 적막을 깬 건 옆 벤치에서 나누던 인터뷰였다. 촬영 중인 카메라가 따로 없는 걸로 보아 라디오 방송이나 글에 실릴 인터뷰라 짐작했다. 우리밖에 없던 전망대의 정적에 녹아들 만큼 인터뷰는 조용히 진행됐다. 너무 조용해서 인터뷰 중인 줄도 모르고 옆 벤치에 덜컥 앉아 버렸다. 앉는 사이 던져진 기자의 질문에 할아버지 한 분이 천천히 대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내 입을 연 할아버지는 한 단어, 한 단어를 꾹꾹 누르며 답을 시작했다. 아주 느린 속도로. 덕분에 아는 일본어를 총동원하니 말하는 내용을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때 부인을 잃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왔어요. 도저히 도쿄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도쿄엔 단 한 번도 다시 간 적이 없어요.


발아래 펼쳐진 도심 풍경이 마구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역시 자연은 멀리서 보는 게, 모름지기 여행은 도시에서 하는 게 제일이라고 떵떵거리던 내 모습을 할아버지에게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뜨끔했다. 무너져 내리던 흉물스러운 도시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을 그일 테니까. 할아버지가 여행자는 아니었지만, 도쿄로 단 한 차례도 다시 간 적 없다는 말에 그가 여행을 떠난다 해도 ‘도시의 여행자’는 되지 않으리란 건 자명했다. 자연에 가자는 제안을 매번 거부하며 여행은 도시에서 해야 한다고 들먹이던 내 여행 취향이 불쾌한 아집일 수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물론 트래킹, 등산, 캠핑 등을 거절했을 뿐, 그런 자연 여행 말고 도시 여행을 하자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강요야 없었어도 반복되는 거절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지인이 꽤 많았다. 자연을 만끽하는 데 초점을 둔 게 아니라 함께 추억을 쌓자는 제안을 거절한 셈이니까. 에둘러 거절했으면 그나마 덜 싸늘하게 들렸으려나. 등산에 ‘ㄷ’ 자만 나와도 단칼에 잘라 냈으니 거절당하는 쪽에선 산이 아니라 본인들에게 치를 떠는 거라고 곡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인제 와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려니 민망해서 무려 열네 개의 도시를 불러오며 뒤늦은 변명을 그 안에 담아냈다.


여행지의 반은 도시고 나머지 반은 자연이다. 도시의 여행자라고 자연과 완벽히 단절된 채 여행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여행자라고 자칭했으니 자연은 잡초 뿌리의 잔털도 거들떠보지 말라는 이분법적인 지적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세상의 반이 남자고 반은 여잔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성별의 사람만 사귀라는 소리와 같다. 시내의 산책자라도 산책 중에 자연을 마주칠 때마다 눈을 콱 감아버리진 않는다. 마지막 여행기처럼 시내 어딘가에 터를 잡고 산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게 나 같은 사람에겐 자연형 여행이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진짜 자연형 여행자처럼 산으로 숲으로 나서는 상상을 짤막하게나마 했다. ‘언젠가’가 어느 정도의 기간일지 가늠할 수 없어 지금은 막연하기만 한 먼 미래지만, ‘V.V’를 뒤집어 ‘ㅅ.ㅅ’를 만들어 낸 발상의 전환이 내 여행 취향에도 반영되길 바란다.


뒤집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TMI 대방출. 목차도 한번 뒤집어보자며 차례는 가나다 역순으로 순서를 맞췄다. 첫 이야기는 한글 자음 마지막 글자 히읗이고 마지막 이야기는 첫 글자 기역이다. (우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