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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Feb 08. 2022

부질없다-

 단상 (29) -이어트


 지난 연말, 건강 검진을 받을 때 바로 통보된 결과에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눈으로, 한 번은 귀로. 키와 몸무게를 재는 기계 위에 올라서서 내려올 때 직원은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이 "본인 신장, 체중 맞으시죠?"라며 뼈 때리는 말을 날렸다. 키나 몸무게야 본인이 대략적으로라도 그 수치를 알고 있을 테니 혹시나 기계에 이상이 있어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나온 건 아닌지 별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뱉은 멘트겠지만, 유달리 뼈 때리는 말로 들렸던 건 내 눈에 들어온 수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키는 뭐 정상적인 오차 범위 내에 들어가 있었으니 쿨하게 지나쳤는데, 몸무게엔 난생처음 보는 무게가 찍혀 있었다. 옷을 입고 있었고 핸드폰을 미처 주머니에서 빼지 못하고 체중계에 올랐으니 애써 결괏값에서 숫자 1을 줄여보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보는 무게임은 같았다. 나 스스로 정한 상한선에 체중이 다다르면 하루 종일 굶더라도 어떻게든 살을 빼곤 하던 나였는데, 그 다짐은 다이어트의 굴레 속에서 무색해지고 말았다. 


 다이어트의 굴레, 어쩌면 악순환에 가까울지도 모를 이 굴레에 이름을 붙이자면 '부질없다'-이어트 쯤이 되지 않을까. 살이 좀 쪘다고 빼보겠답시고 설쳐도 결국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고 말며, 작년 연말처럼 방심하면 현상 유지는커녕 듣도 보도 못한 몸무게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처하니까 말 그대로 부질없는 다이어트가 되어 버린다. 술도 안 마시고, 야식도 잘 안 먹고 그렇다고 폭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배가 고프다는 데에 너무 의미를 부여했다는 게 떠올랐다. 


 부질없다-이어트의 굴레에 빠지는 과정은 이렇다. 


1) 살이 좀 찐 것 같으니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운동을 하고 간헐적 단식 따위를 하기도 하면서. 

2) 식단 조절을 하니 당연히 배고픔을 느낀다. 속이 꾸르륵 거리는 그 허기진 느낌이 싫어 쓰린 속을 살짝만 달래려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3) 손에 들린 주전부리는 견과류, 과일 같은 것이었다가 점점 편의점 등지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빵 종류로 변한다. 어느새 식단 조절이 무색하리만치 저도 모르게 탄수화물에 중독되어 간다. 

4) 다이어트를 하자는 다짐이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걸 알아차리며 동시에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요즘 배고픈 걸 느꼈던 때가 없다'는 것. 점심은 샐러드로 간단히 했지만 간식으로 빵을 처먹어 댔고, 배는 안 고프지만 저녁은 먹어야겠다며, 그러나 다이어트 중이니 계란이나 고구마 따위를 집어 먹는다.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는 자기 암시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거기에 저녁을 애매하게 먹은 탓에 입이 심심하다며 또 뭔가를 까먹는다. 결국 식단 조절은 망상 속에서나 했던 것이다. 

5) 일상 속에서 배고프단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데에 기시감을 느끼며 이렇게 계속 위와 장에 음식물을 집어넣으면 안 되겠다며 또 헛헛한 다짐을 한다. '오늘부터 다이어트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그러니까 부질없다-이어트 말이다. 


 그나저나 건강 검진 때 눈으로 놀란 게 계기판에 뜬 체중이었다면 귀로 놀랐던 건 치과 검진 때 들은 진단이었다. "사랑니에 충치가 생기기 시작했네요. 이거 빼셔야 돼요~" 하아... 치과 무서운데... (예전에 사랑니 뺄 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니 빼면 그날은 아마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힘들 테니 부질없다-이어트의 굴레를 잠시나마 끊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치과 예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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