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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Feb 09. 2022


'집'의 함정

단상 (30)


  알고리즘이란 건 정말 무섭다. 드시던 영양제가 거의 다 떨어져 간다는 어머니의 한마디 말은, 분명 내 고막에만 와닿았을 그 말은 내 손 안의 모바일 기기의 알고리즘 영역 어딘가에도 가 닿았다. 네이버 앱 카테고리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다가 '쇼핑' 카테고리에 다다랐을 때, 그날 저녁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될 제품으로 소개된 건 다름 아닌 어머니가 드시는 그 영양제였다. 검색창에는 영양제 이름은커녕 이름에 쓰인 자음 한 글자마저도 치지 않았는데 내 핸드폰 위에 마침 딱 그 제품이 뜨는 걸 보니 알고리즘이란 말이 전쟁 중에 스파이가 상대 진영에 몰래 심어 놓은 도청장치라도 되는 것처럼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귀신의 수작이 아니고서야 어머니의 입을 떠나 내 고막을 스치고 사라진 음성이 네이버 앱에 가 닿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써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잊으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알고리즘이 날 이끈 게 아니라는 판결이 났다. 이 라이브 쇼핑 방송 소식을 본 어머니가 내게 넌지시 주문해 달라는 미끼를 투척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 설 연휴 전이었으니 설 선물로 사드리자며 먹은 마음은 바쁜 일상에 치여 마음 바깥 어딘가에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아까 그 라이브 쇼핑 방송이 떠올라 부랴부랴 네이버 앱에서 <쇼핑 Live>에 접속했다. 다행히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 끝나갈 즈음이었지만. 대개의 쇼핑 라이브(혹은 홈쇼핑)가 그렇듯 쏠쏠한 혜택은 그 방송 중에만, 한정된 시간에 한하여 제공한다. 드시던 영양제가 더 좋은 구성으로 리패키징됐는데도(박스도 원래 은색이었는데 금색으로 바꿨더라) 할인 폭이 커서인지 예전보다 더 저렴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지급된 쿠폰이 바로 적용되고 배송까지 무료로 해 줘서 결제 금액엔 꽤 놀랄 만한 가격이 찍혔다.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기 전, 후다닥 주문을 완료했다. 


 누가 배달의 민족이자 성격 급한 한국 사람들 아니랄까 봐  바로 다음날 점심때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어머니께 바로 카톡을 드렸는데 외출 중이라 저녁에나 집에 들어가신단다. 그리곤 저녁때 문 앞에 있어야 할 택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갈을 받았다. 설마 누가 훔쳐갔을 리는 없을 테고... 분명 배송 완료 문자도 왔는데... 갸우뚱하며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웬걸, 이사하기 전 주소로 보내버렸다. 전 주소는 서울이지만, 현주소는 일산이니 예전 집에 찾아가서 받아가지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라이브가 끝나기 전 급하게 주문을 하다가 '집'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다. '집'이라고 되어 있으니 응당 우리 집이라 여겼다. 정확한 배송지를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사 후에도 네이버 쇼핑을 이용했고 여태껏 배송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 그러니 쇼핑 라이브에서 주문한들 '집'이란 타이틀로 저장해 둔 주소는 여지없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소라고 믿었다. 도대체 어느 단계에서 뭘 했기에 주소가 옛날 집 주소로 지정이 된 건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택배도 오리무중이다. 설 연휴 하루 전 고객센터로 해당 사항을 문의했고 다시 회수 후 재배송해 줄 거란 답을 받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택배만큼은 예외일 것 같아 금요일에 연락을 했는데 반송 접수를 했는데 반송장이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회수한 담당 기사가 확인을 해서 전화를 줄 거라는데 3일(주말 제외)이 지난 오늘까지 전화가 오지 않으니 반송하려다 분실된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싹트는 중이다. 


 그저 주소를 잘못 입력했을 뿐인데 확인조차 되지 않는,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꼴이 될 줄이야... 집의 함정이 아니라 집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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