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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r 29. 2022

막이 내리길

단상(39)


다음 달에 있을 콘서트를 예매했다. 1열은 사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 앞자리에서 공연을 볼 요량으로 서둘러 예매를 했을 만큼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다. 공연 날도 그만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데... 뜬금없이 무대의 막이 내리길 바란다니. 소원이라고 하기에 저주에 가까운, 그러니까 헛소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제목이다. 예매한 지 며칠도 안 돼서 그 가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팬심이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고, 혼자만 공연을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스토커적 기질을 선보이며 어긋난 팬심을 억하심정처럼 내비치려는 것도 아닐 텐데 막이 내리길 바란다니. 


콘서트의 주인공은 얼마 전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는 타이틀 곡을 선보이며 십여 년 만에 컴백한 빅마마다. 데뷔 때부터 마지막 활동이었던 5집까지(5집은 음반만 냈지 방송 활동은 하지 않았으니 무대에서의 완전체 빅마마 활동은 4집 때까지로 기억하지만 아무튼), 따져보니 중학생이 대학생이 되는 긴 기간 동안 내 최애 가수였던 그 빅마마 말이다. 싱글 음원 <하루만 더>로 작년에 깜짝 컴백했을 때 연락 한 번 안 하고 살던 중, 고, 대학교 동창들에게서 "빅마마 보니까 네 생각이 났다"는 메시지를 받은 걸 보면 덕질을 참 요란하게 하고 다녔구나,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6집 정규 앨범이 나왔고 당연한 수순처럼 열릴 콘서트는 예매를 안 하고 배길 수 없었다. (서울 공연은 4월 마지막 주 주말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답니다. 깨알 홍보ㅎㅎ)


이 정도의 팬심을 가진 자가 대뜸 막이 내리길 바란다고 하니 서두에 주저리주저리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막이 내리길 바라는 이유는 십 년도 더 된 빅마마 3집 콘서트 때문이다. 3집 앨범 제목은 'For the people'이었고, 앨범이 위한다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늘 있는 가족과 친구, 연인이거나 제각각의 상처를 지닌 불특정 다수이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그댄 내게 변치 않는 희망을 준 사람"(1번 track 언니 中)이라거나 "잠든 내 볼에 입 맞추시던 밤은 그만큼 더 힘들 날이란 걸"(4번 track 축복 中)이라며 따뜻한 감사의 노랫말을 전했다. "아물지 않는 깊은 너의 빈자리"(10번 track 연 中),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외치다 상처받을까 너무나 두려워"(11번 track 사랑을 외치다 中)라며 이별로 상심한 이의 위치에서 노래해 주기도 했다. 잔잔하게 일어난 파동은 이별 노래의 구간을 거치며 강렬해졌다가 이내 마지막 트랙 'Thanks to'에 다다르자 애틋한 여운으로 마음 안에 퍼졌다.


공연 콘셉트는 전반적으로 앨범 콘셉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노랫말에 목소리를 담아 음원으로 빚어낼 때의 마음을 공연장을 찾아 준 사람들을 위해(For the people) 전하려는 훈훈한 분위기가 공연장을 메웠던 기억이 아직까지 난다. 앨범을 들을 때도 애틋한 여운을 남긴 마지막 트랙 'Thanks to'가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흘러나오려는 찰나 막이 내렸다. 무대를 가린 레이스로 된 얇은 한 겹의 막. 



그날 객석에는 시각장애인 단체 관객이 있었다고 한다. 빅마마가 여느 아이돌처럼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로 무대를 채우는 가수는 아니니 공연을 즐기는 데에는 다른 관객과 별반 다를 건 없었을 터.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멤버는 그들이 공연장까지 오는 데에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그 용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노래로 가족, 친구, 연인, 심지어 이름 모를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려던 모습이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물론 아주 얇은 레이스 막이어서 노래를 부르는 실루엣은 여실히 보였지만 잠시나마 장애를 가진 이의 용기와 그 힘듦에 공감하고자 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는 게 당시 중학생이던 내게 엄청난 충격이자 감동으로 다가왔다. 


6집 앨범에는 바로 저 'Thanks to'가 2022년의 새로운 편곡으로 다듬어져 실려 있다. 마지막 트랙은 타이틀 <아무렇지 않은 척>의 반주 트랙이니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은 'Thanks to'다. 괜히 십 년도 더 된 3집 콘서트 이야기를 질질 끌고 와서 6집 콘서트에 엮은 건 아니다.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번에 실린 'Thanks to'는 기다려 준 팬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담은 것이겠지만, 이번 공연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용기에 감사를 전하는 막이 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이렇게 단상으로 적어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최근 장애인 시위 때문에 여기저기서 잡음이 끊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시위의 형태가 어쩔 수 없이 불편을 발생시키는 형국이다 보니 어느 진영의 행동이 옳고, 누구의 발언이 그르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한 겹의 막을 내릴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감의 여유가 3집 콘서트 때 내게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듯 모두에게 깃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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