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어 trdelník 헝가리어 kürtőskalács n. 굴뚝빵
*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목에서만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발음을 표기했고 본문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작성했습니다.
빵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남들은 살을 뺄 때 무탄수화물 식단이지만 난 '절반' 탄수화물 식단이다. 밥은 끊어도 빵은 먹는다. 그러면서 원래 둘 다 먹다가 하나만 먹으니 탄수화물 섭취를 줄였다고 합리화한다. (밥을 먹고 빵을 끊어야 하는데)
프라하 시계탑을 보러 구시가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뜨는 마음속 알림.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밀가루를 굽는 냄새에 홀려 시계탑을 향해 가다 말고 굴뚝빵 노점상을 향해 갔다.
'Trdelník', 굴뚝빵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배가 너무 고팠는데 마침 빵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T-ř-delník이 아니어서, 에르쥐의 저주에 걸린 단어가 아니어서였다. (말.모.여. (14) 편, ‘체코어 333와 444’ 참조)
가운데가 뻥 뚫린 굴뚝 모양을 내게끔 반죽을 둥근 원통에 둘러 굽는다. 그걸 보고 있자니 트르델닉~ 트르델닉~, 뭔가 빙글빙글 돌아 감기는 어감의 맛이 좋았다. 시나몬을 솔솔 뿌린 굴뚝빵 맛도 좋았고.
* 우리나라 관광객은 ‘트르들로(trdlo)’라고 더 많이 하지만, 본편에선 트르델닉을 다룸. (trdlo는 굴뚝 모양으로 빵을 굽는 원통 틀인데, 이 단어에서 트르델닉이 유래됨)
체코 전통 빵이라 알고 먹은 트르델닉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다. 헝가리 이름 'kürtőskalács'[퀴르퇴-슈컬라-츠]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체코에선 체코어로, 헝가리에선 헝가리어로 이름 붙인 건 당연한 일. 이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선 헝가리 전통 빵이란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나 하던 ‘찐’ 원조 찾기를 동유럽 나라를 두고 하게 되다니. 두 단어를 검색어로 입력한 결과는 이랬다.
- trdelník: 슬로바키아 ‘스칼리차’(Skalica)에서 유래한 체코 전통 빵
- kürtőskalács: 루마니아 북부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유래한 헝가리 전통 빵.
1992년까지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한 나라였다. 그러니 체코 전통 빵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헝가리는 트란실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쉽게 빵을 전파받았으리라. 둘 다 ‘내가 원조다’라고 해도 믿을만하다. 정보를 더 읽어 내려가니 ‘찐’ 원조를 찾을 수 있었다.
「헝가리 장군 요제프 그바다니(József Gvadányi)는 은퇴 후 스칼리차로 이주했다. 굴뚝방 레시피를 아는 트란실바니아 출신 요리사를 고용했는데, 'kürtőskalács'를 응용하여 스칼리차의 'tredelník'을 만들었다.」 (‘Trdelník’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
단편적으로 존재하던 트란실바니아와 스칼리차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트란실바니아 → 헝가리 → 슬로바키아 스칼리차 → 체코. 순서가 이렇게 되니 ‘찐’ 원조는... 체코도 헝가리도 아닌 루마니아였다.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깨달은 사실. 체코, 헝가리 여행 5년 뒤 루마니아 여행에서 굴뚝빵을 먹은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전파 순서와 정반대로 체코와 헝가리를 거쳐 제일 마지막에 루마니아에서 먹게 된 셈. 도장 깨듯 원조를 찾아다니며 굴뚝빵을 먹은 기분이다.
트르델닉이 빙글빙글 감기는 어감의 맛이라면, 헝가리어 '퀴르퇴-슈컬라-츠'는 좀 더 쫄깃한 맛이다. 모음의 장단 구분이 뚜렷한 헝가리어. '퇴-'하고 중간에 한번, '라-츠'하고 끝에도 한 번 장모음으로 음을 길게 끌어서인지 쫄깃한 어감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헝가리어에 대한 단상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