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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l 28. 2022

반반 숱 많이

단상 (56)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고 변명하듯 말하지 않아도 덥기로는 지구가 망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주르륵, 땀구멍 위로 맺히기가 무섭게 땀이 흐른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그 손에는 무색인 땀만 묻어나야 하거늘, 거뭇거뭇한 얇은 흔적이 같이 묻어 있다. 아차, 눈썹을 그리고 나왔지. 땀을 닦으려다 애써 그린 눈썹을 지우고야 만 것이다. 하필 또 한쪽만.


생전 눈썹이란 존재에 신경 쓴 적이 없던 나는 항공사에 입사하며 승무원으로서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썹을 정리하고 그리는 행위를 배우게 됐다. 남의 눈썹을 다듬는 데에 신이 났던 여자 동기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칼을 들었다. (당연히 손가락만 한 눈썹 칼이다. 회칼이나 과도일 리 없으니 걱정은 제쳐 두시길) 그때 처음으로 내 눈썹에 '산'이 있다는 걸 알았고, 짙게 자란 눈썹 주요부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저분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잔털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눈썹 한가운데가 ^ 이 모양으로 솟아올라 산이라고 일컬은 그 부분을 그녀들은 주저하지 않고 밀어 버렸다. 하긴, 도로를 깐다며 밀어버리는 게 산이니 눈썹 산을 못 밀어버릴 이유는 없지. 몇 번의 터치가 더해졌다. 잔털이 깎였고, 군데군데 빈 부분이 까만 연필로 칠해졌다. "이거 기억해뒀다가 이대로만 다듬고 이대로만 그려." 그때 그 말을 승무원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찰떡같이 따르고 있다.


  다듬어버린 눈썹은 깎여 나간 부분을 그려서 채우지 않으면 - 살갗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눈썹 그리는 습관이 들기 전까지는 일할  빼고는 굳이 눈썹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 친구들과 찍은 사진 ,  눈썹이 반절만 남아 있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매일 같이 눈썹을 그리고 나가야 하는 운명이란  깨달았다. 귀찮은 나머지 지저분해 보이더라도 덥수룩한 채로 놔두는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게 귀찮으면 눈썹 문신을 하면  텐데...) 아무튼, 땀을 닦다 한쪽 눈썹을 지워 버린 연유애는 이토록 장황한 사연이 있었다.


지워진  덩그러니 남아 있는 왼쪽 눈썹. 새까맣게 잘도 칠해진 오른쪽 눈썹. 지하철 차창에 비친 반인반수(?) 같은 눈썹을 보며 오른쪽 눈썹도 지워버릴까, 고민의 고민을 했다. , 왼쪽 눈썹을 그리면 되는  아니냐, 하시겠지만 외출할  눈썹 펜슬을  들고 다닌다. 딱히 파우치 같은  들고 다니지도 않거니와 펜슬을 챙겨 다니기도 귀찮다. (가만 보면 참 귀찮은 것도 많다.) 결국 화장실에 들러 벌거벗는 심정으로 슥슥 남은 눈썹을 지웠다.  찰나에도 그나마 왼쪽 눈썹에 숱이 조금이라도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고로,  글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반반  많이' 됐다. 반반 타령을 했으니 이따 저녁에 치킨이나 시켜 묵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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