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56)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고 변명하듯 말하지 않아도 덥기로는 지구가 망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주르륵, 땀구멍 위로 맺히기가 무섭게 땀이 흐른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그 손에는 무색인 땀만 묻어나야 하거늘, 거뭇거뭇한 얇은 흔적이 같이 묻어 있다. 아차, 눈썹을 그리고 나왔지. 땀을 닦으려다 애써 그린 눈썹을 지우고야 만 것이다. 하필 또 한쪽만.
생전 눈썹이란 존재에 신경 쓴 적이 없던 나는 항공사에 입사하며 승무원으로서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썹을 정리하고 그리는 행위를 배우게 됐다. 남의 눈썹을 다듬는 데에 신이 났던 여자 동기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칼을 들었다. (당연히 손가락만 한 눈썹 칼이다. 회칼이나 과도일 리 없으니 걱정은 제쳐 두시길) 그때 처음으로 내 눈썹에 '산'이 있다는 걸 알았고, 짙게 자란 눈썹 주요부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저분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잔털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눈썹 한가운데가 ^ 이 모양으로 솟아올라 산이라고 일컬은 그 부분을 그녀들은 주저하지 않고 밀어 버렸다. 하긴, 도로를 깐다며 밀어버리는 게 산이니 눈썹 산을 못 밀어버릴 이유는 없지. 몇 번의 터치가 더해졌다. 잔털이 깎였고, 군데군데 빈 부분이 까만 연필로 칠해졌다. "이거 기억해뒀다가 이대로만 다듬고 이대로만 그려." 그때 그 말을 승무원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찰떡같이 따르고 있다.
한 번 다듬어버린 눈썹은 깎여 나간 부분을 그려서 채우지 않으면 휑-한 살갗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눈썹 그리는 습관이 들기 전까지는 일할 때 빼고는 굳이 눈썹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 속, 양 눈썹이 반절만 남아 있는 내 얼굴을 발견하고는 매일 같이 눈썹을 그리고 나가야 하는 운명이란 걸 깨달았다. 귀찮은 나머지 지저분해 보이더라도 덥수룩한 채로 놔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게 귀찮으면 눈썹 문신을 하면 될 텐데...) 아무튼, 땀을 닦다 한쪽 눈썹을 지워 버린 연유애는 이토록 장황한 사연이 있었다.
지워진 채 덩그러니 남아 있는 왼쪽 눈썹. 새까맣게 잘도 칠해진 오른쪽 눈썹. 지하철 차창에 비친 반인반수(?) 같은 눈썹을 보며 오른쪽 눈썹도 지워버릴까, 고민의 고민을 했다. 아, 왼쪽 눈썹을 그리면 되는 거 아니냐, 하시겠지만 외출할 때 눈썹 펜슬을 안 들고 다닌다. 딱히 파우치 같은 걸 들고 다니지도 않거니와 펜슬을 챙겨 다니기도 귀찮다. (가만 보면 참 귀찮은 것도 많다.) 결국 화장실에 들러 벌거벗는 심정으로 슥슥 남은 눈썹을 지웠다. 그 찰나에도 그나마 왼쪽 눈썹에 숱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고로, 이 글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반반 숱 많이'가 됐다. 반반 타령을 했으니 이따 저녁에 치킨이나 시켜 묵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