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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05. 2022

요가하고 있시바

단상(57) 다시, 스트레칭



침대 머리맡에 무신경하게 놓아둔 시바 인형. 귀엽다고 머리맡에 둘 때는 언제고 방치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바에게 무신경했다. 어느 날, 자려고 침대에 드러누우려는데 우연히 저 시바가 눈에 밟혔다. 허리 아래가 45도 정도의 각도로 위로 향하고 있는 채였다. 어쩌다 저런 자세가 된 걸까. 갑자기 공포물로 장르를 바꾸어 - 시바 인형이 주인 모르게 사브작사브작 움직이고 있다는 둥 - 더운 날씨를 몰아볼까 했지만, 저런 모양새라면 무서워봤자 더위가 물러갈 리 만무하니 그대로 일상 에세이를 기록하기로 했다. 


하필 또 바다 사진 엽서북 위에 올라앉아 허리를 위로 재끼고 있어서 흡사 바다에서 요가를 하는 시바견 한 마리로 보였다. 처음에는 형광등 언저리에 다리 끝이 닿아서 얼떨결에 요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했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저 솜뭉치의 상반신이 엽서북에 위에 걸쳐서 뒷부분이 위로 둥실 떠오른 것이었다. 참 팔자도 좋지.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몇 날 며칠이고 요가하며 심신수련을 하고 있다니. 개팔자는 역시 상팔자였나 보다.


우연히 눈에 밟힌 '요가하고 있시바' 녀석 때문에 뜬금없이 스트레칭이 하고 싶어졌다. 파리에 살 때 꽤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내가 등록한 헬스클럽에는 각종 GX 프로그램이 있었고 스트레칭 세션도 그중 하나였다. 수요일 세션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레스토랑 브레이크 타임과 맞아떨어져서 심각하게 뻣뻣한 몸의 유연성을 조금이라도 자극해보고자 스트레칭에 도전했었다. 까짓것, 유산소도 아니고 웨이트도 아닌 스트레칭인데 뭐 별 게 있겠어- 라는 호기로 시작했다가 첫 시간만에 별을 볼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담당 트레이너가 요가 마스터였다는 설명이면 왜 별을 봤는지 짐작이 가지 않으려나...


첫날의 아찔함 때문에 망설인 날도 있지만 낸 돈이 있으니 꾸역꾸역 잘도 스트레칭을 들으러 갔다. 신기하게 몸은, 영원히 굳어 있을 것 같던 유연성은 나날이 좋아졌다. 다리를 굽히지 않고 서서 양손으로 땅을 짚는 동작은 어린이들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이라 여겼건만, 가장 긴 중지의 끝이 닿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바닥 가운데 부분까지 닿는 정도가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180도로 다리를 쫙쫙 찢어 대는 사람들 틈에서 45도만 다리를 벌려도 골반이 찌릿거려서 눈치를 보던 나도 45도, 아니 그래도 70도 정도까진 여유롭게 다리를 벌리며 찢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세가 교정이 된 건지, 그 해 건강검진 때 키가 1cm가 자랐다(할렐루야!)


- 마는, 분명 파리에 살 때라고 했다. 이미 3년 전 일이다. 귀국 직전까지 스트레칭 세션을 들은 게 아니니 스트레칭을 안 한 기간은 3년 2~3개월은 됐을 것이다. 그만큼 몸도 굳었을 테고, 1cm의 키도 줄어들었겠지... 헬스장에 들른 그저께 '요가하고 있시바' 녀석이 떠올라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부터 했다. 선 채로 땅도 못 집던 각목과도 같은 뻣뻣함으로 역행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그때만큼 몸이 유연하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3년 간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면 아마 나도 다리 정도는 쉽게 찢지 않았을까(그럴 린 없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내심 아쉽다가도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몸이 아예 굳어버리진 않았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올 하반기의 목표는 다리 찢기다! 누가 봐도 지키지 못할 다짐을 적어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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