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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06. 2022

나의 비빔국수

단상(58)


제목은 꼭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후렴구 멜로디를 덧씌워 읽어주시길 바라며... (나의 비밀~정원♪)


먹으라는 음식은 안 먹고 백날 천날 더위만 먹어 재꼈더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근래에 막 뭔가 먹고 싶다는 메뉴도 좀처럼 없었고, 밥을 먹을 때도 끼니를 때운다는 목적 말고는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말복에 삼계탕을 먹어 기운을 북돋운다거나 일상 속 미식 여행을 하듯 침샘을 마구 자극할만한 한 끼 식사를 한다거나... 애초에 먹을 걸 보고 마음이 동하질 않는데 기운이고 미식이고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워낙 '쉬운' 입맛의 소유자인 탓에 뭘 먹어도 적당한 맛만 느껴지면 맛있다고 여겨버리는 나인데도 요즘은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십만 단위까지 닿고야 만 잊히는 줄 알았던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 때문에 덜컥 겁도 났다. 안 그대로 주변에 다시 코로나에 걸린 지인이 늘어가는 추센데 나라고 걸리지 말란 법이 없었다. 예전이든 최근이든 전염병에 걸려 버린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미각을 잃었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그냥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뭘 먹어도 '더럽게 맛없는' 꼴이 된다는 그들의 후기가 떠올랐다. 물에서 쓴 맛이 난다고 하던...


기분 탓이었을까. 그 말을 떠올리고 냉수를 한 잔 벌컥 들이마셨는데 괜스레 쓴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혀의 돌기 중에서 쓴 맛만을 감지하는 돌기만이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뭘 먹어도 맛이 없는 게 문자 그대로 맛이 없어서(無) 미식의 기쁨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기엔 코로나의 대표 증상인 발열이 없었으니 쓸데없는 공상일 뿐이었다. 냉수로는 열기를 다 떨쳐내지 못하겠다며 냉동실을 열어젖혀 꺼내 먹은 아이스크림에서 단맛 신맛을 다 느꼈으니 발열까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저녁, 동네에서 밥을 대충 때우고 들어가기로 했다. 배는 고프니 밥은 먹어야겠다만 뭘 먹어도 맛이 없을 것 같은 때이니 내 손으로 맛없는 상을 직접 차려 먹을 의욕은 더 없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겠지만 남이 차려준 음식을 대충 먹는 쪽이 낫다는 판단에 동네에서 몇 번 지나쳤지만 한 번도 가보진 않았던 우동집을 들어갔다. 대표 메뉴는 우동이었지만, 이 날씨에 뜨끈-한 국물에 담긴 면을 건져먹고 싶지는 않아서 쫄면과 비빔국수를 고민하다 비빔국수로 주문했다. 


털썩, 한숨 쉬듯 아무 자리에 걸터앉은 채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빔국수가 나왔고 별 기대 없이 한 젓가락 집어 입으로 쏙 넣었다. 


새콤- 머리 위로 새콤새콤한 맛의 보이지 않는 방울들이 톡톡 터졌다. 

매콤- 쓴 맛만 감지할 줄 알았던 혀의 돌기에는 평소 좋아라 하던 매콤함이 찰싹찰싹 달라붙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웬걸, 새콤하고 매콤하며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비빔면의 향연이 입속에서 열렸다. 여태껏 먹어 본 음식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맛도 아니었고, 곰곰이 따져 보면 평범한 비빔국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저 날만큼은 무지막지하게 맛난 음식이었다. 입 속으로 국수를 빨아들이는지, 내가 국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허겁지겁 접시를 비웠다. 자작하게 남은 빨간 국물과 부스러기처럼 남은 고명까지도 싹싹 긁어 그야말로 설거지를 한 것처럼 싹싹 비웠다. 


특정 음식이 기운이나 입맛을 북돋아준다는 말을 신통하게 여긴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날 우연히 잠든 내 입맛을 깨운 비빔국수 덕에 조금은 신통하게 여겨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비빔국수를 먹어야지. 기다려라, 나의 비빔~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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