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독볶이 19화

대나무 내음만이라도

독.볶.이 - 독백으로 볶은 이야기(17)

by Fernweh

독.볶.이

(17) 대나무 내음만이라도



[조명 서서히 ON. 무대 중앙 대형 스크린에 일인칭 시점으로 담양의 죽녹원을 걷는 영상이 재생된다. BGM은 양반언의 ‘a wind with no name’. 도입부부터 치고 나오는 몽골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무대를 채운다. 보컬 파트가 짧게 끝나고 피아노 선율이 나올 즈음 스크린 위로 가사의 일부분을 해석한 시구가 아래에서 위로 떠오른다. 무대 왼편에서 걸어 나오던 주인공이 시구를 낭독한다]


봄이 오는 것은 언제나 저 산 너머에서
가을의 바람과 빛도 저 산에서 느껴지네
저 산은 내 마음속에도 내 꿈속에도
언제나 그곳에 있네

[가만히 멈춰 선 주인공 뒤, 이번엔 죽녹원을 드론으로 찍은 영상이 재생된다. 주인공은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관객석 너머를 바라본다. 1분 정도 음악이 재생되다가 FADE OUT]

솬: 가사도, 노래도, 영상도 다 고즈넉하니 좋네요. 방금 들으신 곡은 양방언의 ‘이름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음악 안에 실린 노래는 내몽골 가수인 ‘치치크마(Qiqigemaa)가 부른 ‘나의 사랑하는 오로촌’이라고 합니다. 가사는 ‘서 웅크-바일(Se Enkh Baayar)’이라는 몽골 작사가가 썼다고 하고요.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혀 줘서 복잡한 일상에 치일 때면 한 번씩 듣는 노래입니다. 영상에는 계절이 바뀌어도 저 너머에 있고, 마음과 꿈속에도 있다는 ‘그곳’을 한 번 담아봤어요. 다들 잘 아시는 담양의 ‘죽녹원’입니다. 그토록 마음에 품었다고 하니 누가 들으면 담양이 고향인 줄 알겠네요. 저는 담양 출신이 아니랍니다. 제가 뭐 팬더도 아니고 대나무 성애자는 더더욱 아니죠. 그런데도 죽녹원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이유가 뭐냐, 바로 담양을 가려고만 하면 사건사고가 벌어져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죽녹원에 가긴 갔는데요. 담양을 가기 며칠 전, 빗길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왼쪽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깁스는 피했지만 인대를 다쳐 붕대를 칭칭 감아 매고 있어야 했죠. 친구들과 담양을 포함한 전라도 여러 도시를 둘러보기로 작정했던 여행이었어요. 긴 여행을 감당하기엔 발목이 성치 못해서 눈물을 머금고 저는 여행 포기를 선언해야 했습니다. 근데 역마살이라는 게 무섭더라고요. 친구들이 잔뜩 신나서 보내온 여행 사진을 보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방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말만 박찼다고 하지 왼쪽 발을 쩔뚝거리며 질질 끌고 담양 가는 버스에 올랐죠. 담양에 도착해 친구들과 만나 바로 죽녹원으로 향했습니다. 죽녹원에 가긴 간 거죠. 문자 그대로 가기'만' 했습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었을뿐더러 한여름이라 입구에서 몇 걸음 들어가자마자 전 지쳐버렸습니다. 친구들 발목까지 잡고 싶진 않아서 입구 언저리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그들을 보내주었죠. 생애 첫 죽녹원 마실은 팬더 동상 옆에서 조신하게 앉아있어야 했던 슬픈 기억으로 남았답니다.


입구에 도착했는데 지친 발목 부상자... 말그대로 입구컷


시간은 흐른 뒤 승무원이 되어 담양을 찾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방 도시의 항공 수요를 끌어내기 위해 대구와 광주발 편수를 늘리던 때였죠. 지금이야 각 도시에 거점을 두고 그곳에 사는 승무원들이 비행 근무를 하는데, 당시만 해도 지방에 베이스랄 게 없었어요. 보통 한 팀을 꾸려 3박 4일이나 4박 5일 스케줄로 각 도시에 내려보냈습니다. 저도 그렇게 4박 스케줄로 광주에 가게 됐습니다. 웬일로 긴 체류 스케줄에 들떠 있었어요. 해외 체류도 아닌데 말이죠. 죽이 잘 맞는 팀원들이라 비행 마치고 소소하게 회포나 풀자는 이야기를 나눴더랬죠.

게다가 중간에 하루가 완전히 비는 스케줄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일본의 ‘기타큐슈’로 가는 전세기를 띄웠는데, 늦은 저녁 비행이라 기타큐슈를 찍고 한국에 돌아오면 자정이 지나 날짜가 바뀌는 일정이었어요. 광주에서 기타큐슈요는 비행시간이 30분 밖에 안 나와요. 광주공항이 국제공항이 아니라서 출발은 무안국제공항에서 해야 했는데, 비행시간보다도 광주에서 묵는 호텔에서 무안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리는 희한한 노선이었죠. 근무 시간보다도 더 긴 이동시간에 아무도 토 달지 않은 건 날짜가 바뀌어 도착하는 덕에 그날 하루를 통으로 쉴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새벽 3시경에 호텔에 복귀해 늦게까지 푹 자고 일어나도 덤처럼 얻은 하루가 아직 길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디 마실이라도 가자고 팀원들에게 제안했죠. 전에 제대로 보지 못한 죽녹원이 떠올랐는데, 광주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서 담양에 가기로 했답니다. 기타큐슈 노선 근무를 별탈없이 마치고 담양에 놀러 갈 생각에 그때부터 벌써 마음이 들떴답니다.


별 탈은 없었어요. 비행시간이 30분이면 비행기가 떴다가 내리는 시간이에요. 그 짧은 타이밍에 맥주를 찾는 손님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면 신기했지,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저만 빼면요. 광주를 내려갈 때부터 목이 좀 칼칼했어요. 감기인가, 했지만 열이나 다른 증상이 없어서 그저 목이 좀 쉰 거라고 생각했죠. 광주 체류 이튿날까지 국내선 근무를 하면서도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목이 계속 가라앉아서 스트랩실을 사 먹긴 했지만요. 그런데 기타큐슈 노선에서 기내 방송을 할 때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방송하면서 목이 답답한 걸 느꼈는데 목이 잠겼을 뿐이라고 방심했죠. 십 분 뒤에 착륙한다고 방송하다가 코가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방송을 마치고는 부랴부랴 화장실에 갔습니다. 있는 힘껏 코를 팍, 풀었습니다. 액체가 코 밖으로 빠져나오는 걸 느꼈어요. 콧물이겠거니, 했는데 이럴 수가, 코피였습니다.

당황스러웠죠. 코피는 저절로 주르륵 나는 건데 터져 나온 코피가 휴지 위로 흩뿌려졌으니까요. 각혈이라도 한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있다가 착륙 오분 전을 알리는 알림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돌아오는 셔틀버스에서 코피가 터졌던 걸 팀원들에게 말하며 오전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와 보고 상태가 안 좋으면 죽녹원은 같이 못 갈 거라는 비보를 전했습니다. 비보가 아니길 바랐으나 결국 비보였습니다. 죽녹원에 함께 가지 못했거든요.

급성 인후염이었습니다. 비행 근무를 한다고 하니 의사는 호전되려던 증상이 덧나기 딱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내가 건조한 데다가 오르락내리락 기압 차가 계속 생기며 기관지가 부었을 테고, 방송하랴 승객 응대하랴 목을 계속 썼을 테니 목이 남아나지 않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팀원들이 죽녹원에서 대나무 내음을 맡을 때 전 물리치료실에 앉아 이름 모를 기계에 달린 마스크를 쓰고 증기나 쐬고 있어야 했답니다. 지난번엔 입구라도 서성거렸는데 이번엔 아예 죽녹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러니 죽녹원을 마음에 품고 있을 만하죠?


그 후에 죽녹원을 가 봤냐고요? 아니요. (멋쩍게 웃는다) 마음에 품은 곳이라고 했지만, 담양에 놀러 갈 만한 기회를 저 스스로 만든 적은 없네요. 이번 독백을 위한 일종의 빌드업이었다고 생각하고 잊어 주세요. 호호. 그럼 아까 중간에 끊었던 영상을 다시 보면서 이번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볼까 합니다.


[다시 스크린에 죽녹원 영상이 뜬다. 노래가 멈췄던 구간부터 음량이 서서히 커지면서 재생된다. 주인공은 유유히 무대 오른편으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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