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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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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26. 2021

소나기를 만난 리옹

프랑스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3-4)






   7월 14일. 프랑스 공휴일인 혁명 기념일을 맞이하야 리옹 근교의 안시(Annecy)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소시민들이 뭉쳐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니 후대의 소시민으로서 그 위대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공휴일의 도심은 쥐죽은 듯 조용할 테니 호수를 품은 자연친화적 도시로 콧바람이나 쐬러 갈 요량이었다. 같은 생각으로 안시를 찾는 인파 때문에 차가 막히진 않을까 염려한 것도 잠시, 정시에 출발한 버스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했다. (대신 오는 길이 기가 막히게 막혔다)


   구글맵상의 도시의 면적과 안시 호수의 면적은 비슷하게 보일 만큼 호수는 컸다. 과연 호수의 도시답다. 광활한 호수의 면적을 사람의 시선에서 보니 바다와 다를 게 없었다. 물론 바다에 맞닿은 휴양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딘가 애매한 휴양지의 느낌이랄까. 날씨라도 쨍했다면 좀 더 휴양지 같았으려나. 간만에 자연을 찾은 여행자를 아랑곳 않고 먹구름은 호수 위에 자꾸만 그늘을 드리웠다. 이따금 먹구름이 지나가버린 찰나에 호수의 풍광이 밝아진 건 다행이었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오느라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리옹에 도착했다. 혁명 기념일 불꽃놀이를 보러 서둘러 구시가지 건너편의 쏜(Saône) 강변으로 향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소나기가 쏟아졌다. 동남아 우기에 쏟아지던 스콜을 가랑비 쯤으로 만들어 버릴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웬만한 비에도 우산을 잘 펼치지 않는 프랑스인들도 서둘러 건물 안으로,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가랑비에도 몸을 사리는, 옷이 젖는 것과 그때의 축축한 기분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나는 그들보다도 재빨리 처마 밑에 피신해 있었다. 


    몸을 피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물이 같았는지, 같은 현관 아래 초라한 모양새로 몸을 피한 행인과 서슴없이 날씨 뒷담화를 나눴다. 잠깐 사이에 머리와 옷에 흩뿌려진 비를 털어내면서. 그는 1초라도 어색한 순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계속 말을 쏟아냈다. 자동차관련 일을 한다는둥, 리옹에 출장 왔다가 겸사겸사 관광 중이라는둥, 스위스에 살아서 리옹은 별로 멀지 않다는둥, 페이스북 계정은 XXX이니 친구 추가하라는둥(실화다)... 그런 얘길 들을 즈음 비가 멎었다. 비 멎는 소리가 원래 이렇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던가.



   

    다시 불꽃놀이를 보러 광장을 지나는데 무지개가 보였다. 워낙 강렬했던 탓에 소나기의 여운이 감도는 무지개였다.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부조리가 시민의 삶을 뒤덮고, 그들의 불만이 끈질기게 이어져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과정과 이날 먹구름이 안시 호수 위를 뒤덮고, 점점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리옹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소나기의 도화선이 된 과정이 사뭇 닮아 있었다. 무지개가 소나기를 몰아 내는 모습까지도. BGM으론 레미제라블 수록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누가 혁명 기념일 아니랄까봐 별의별 생각을 다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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