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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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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25. 2021

수영 루틴이 자리 잡은 파리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3-2)







   파리에서 나날이 불어나는 살의 위협은 헬스장을 등록하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다니려던 헬스장은 1개월 이상부터는 다달이 자동이체 결제가 되도록 등록해야 해서 은행 계좌가 열리기 전까진 다닐 수 없었다. 프랑스 행정업무가 느려 터졌다는 혹평이 무색하게 은행 계좌는 1주일 만에 열렸다. 그런데, 집 주소상의 사소한 문제로 계좌가 바로 닫혔다. 다시 여는데 2주가 걸렸고,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던 담당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계좌를 정상적으로 쓰는 데까지 또 1주가 걸리면서 헬스장 등록도 덩달아 차일피일 미뤄졌다. (근데 미루고 미루다 정작 등록할 때 6개월 일시불 결제 프로모션이 생겨 자동이체 계좌 등록 없이 헬스장을 끊었다. 이건 뭐 시트콤인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나날이 갱신되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 꿈 속에서도 엄습해 올 지경이었다. 체중의 앞자리가 곧 바뀔 거란 두려움에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을 찾았다. 파리시(市)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으로 10회권 요금이 당시 24유로(≒3만원)로 퍽 저렴했다. 한 달에 딱 10번은 수영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파리에서의 수영 루틴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자주 하던 운동은 아니라지 첫날은 자유형 한 바퀴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파리 수영장은 바닥이 U자로 패인 형태라서 레인 중간 쯤에서 밑을 보면 새까만 심연만 보이는데, 심해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가 호흡을 흩트리는 걸 거들기도 했다. (1.5m에서 시작되는 수심은 레인 정중앙에 다다르면 3m까지 깊어진다) 물을 젓는 내내 물안경 너머로 바닥이 보이는 한국 수영장에선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발을 떼면 도중에 멈출 수 없다는 걸 상기하며 호기롭게 출발해도 음파음파, 호흡에 맞춰 고개를 서너 번 물속으로 짚어넣다 보면 아래엔 어느새 짙은 심연만이 자리하고 있다. 안전요원도 있고, 부득이하게 멈춰야한다면 레일을 붙잡고 동동 떠 있으면 되는데도 아득한 수중을 거슬러 가야한다는 압박에 자유형 한 바퀴로도 숨이 벅찼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적응하는 동물 아닌가. 10장의 티켓이 줄어들수록 심연에 대한 공포도 줄었다. 그만큼 물에서의 몸은 가벼워졌다. 숨이 차는 시기가 한 바퀴에서 두 바퀴, 두 바퀴에서 네 바퀴, 네 바퀴에서 여덟 바퀴, 제곱으로 뛰어오른다. 출발 지점에서 똑같은 박자로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칠 때면 고르던 숨 사이사이에 말을 끼워 넣기도 했다. 배려 없이 물을 팍 튀기며 튀어 나가는 덩치 큰 아저씨를 흉보는 말을.


   여섯 번째 방문부터는 틈틈이 한참 전에 배워 둔 영법을 복기해 본다. 배영과 평영에 쓰이는 근육을 오랜만에 썼더니 물에서 나올 땐 몸 구석구석이 저릿하다. 다음번엔 접영을 해야지. 아 맞다, 파리 수영장에선 접영 금지지. (어떤 곳은 평영/자유형 레인이 나눠져 있기도 하다) 하긴 접영은 두어 번만 팔을 저어도 숨이 찰 테니 영법에 욕심내기보다 10회의 루틴을 끝마칠 때까지 저질 체력부터 보강하자고 타협했다.


   헬스장 등록 후부터 한 달에 10회였던 수영 횟수는 석 달에 10회로 확 줄었다. 수영 횟수마저 타협한 셈이다. 하긴, 운동선수도 아닌데 헬스장에 수영장까지 다닐 필욘 없지만(그럴 체력도 없고), 파리 생활의 한 가지 루틴을 잃어 가는 건 아쉬웠다. 아쉬움이 컸다면 한국에 와서도 수영을 다녔겠지만 여지껏 그러지 않고 있다. 코로나로 수영장을 못 간다는 핑계도 이젠 옛말이 됐는데도 파리에서 품었던 수영을 못하는 아쉬움은 부쩍 추워진 날씨가 불식시켜 버렸다. 날씨가 풀리는 봄에나 수영장을 가봐야지...(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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