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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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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Sep 23. 2021

몽파보리 제3장

MON FAVORI 3. 물가에 닿은 편애

 <몽파보리> 프롤로그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ksh4545/73












    파리 헬스장 썰을 읽을 때 혹시 느끼셨는지. 내 DNA에 운동 신경은 거의 없다. 굳이 찾아내야 한다면 돋보기가 아닌 현미경이 필요한 정도. ‘나노’ 단위 운동 신경이라는 건 운동하려 할 때의 동기부여도 나노 단위로 작동한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삶 속에 운동을 끼워 넣는 이유는 살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건강 검진 결과에서 운동 부족이 심각한 건강 저해 요소로 꼽힌 적은 없어서 거창한 이유를 달며 운동한다고 하긴 좀 머쓱하다. 


    살을 운동하는 이유로 꼽기에도 걱정스러운 비만의 영역에 들어선 적이 없어 좀 애매하다. 물론 건강 검진 때 BMI 지수로 판가름된 (경미한) 과체중 판정이야 자주 받지만, 과한 잣대를 설정한 기준이 만들어낸 오판쯤으로 여긴다. 가만 보니 과한 잣대를 설정한 건 병원뿐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체중 상한선에 과한 잣대를 메기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6kg가 한 번에 찌며 입학 당시 69kg이던 체중이 75kg가 되었다. 앞자리가 6에서 7이 된 걸 확인했을 때의 충격은 스물아홉이 기어코 서른으로 바뀌었을 때의 상실감과 비슷했다. 살이 갑자기 찐 적이 처음이라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때 찐 만큼의 체중이 또 찌면 이젠 80kg대에 진입한다는 사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딱 75kg까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면 안 될 것 같단 강박에 생전 처음 헬스장을 등록했다. 


    살을 빼려면 지방을 태워야 한다. 지방을 태우려면 자고로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이다. 헬스장에서 할 수 있는 유산소라 하면 단연 달리기다. 이쯤에서 다시 상기시키는 3대 금기. 축구, 달리기, 등산. 이 모든 금기 사항엔 공통점, 땀이 줄줄 난다. 안 그래도 땀이 많아 잠깐 걸어도 땀이 터져 나오는데 굳이 달리기한답시고 없던 땀도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달리는 장소가 실내여도 말이다. 긁어모아도 겨우 한 줌이 될까 말까 한 동기 부여로는 헬스장 문턱은 넘을 수 있어도 러닝머신의 스위치까진 누를 순 없었다. 


    식단 조절을 하는 것도 아니니 살이 빠질 리가 없다. 과한 잣대를 메겼다고 제 입으로 말했으면서 체중 상한선을 0.5g씩 슬쩍 올리는 꼼수를 부렸다. 75는 76과 77을 거쳐 78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79kg가 됐다. (장난하냐?) 그래도 파리로 어학연수를 가기 전과 파리에 살 땐 처음의 체중 상한선을 잘 지켰다. ‘도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이 드셨는지. 해답은 바로 수영! 내 생애 첫 헬스장은 수영장이 딸린 구립 스포츠 센터였다.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헬스장을 가긴 갔으나 유산소가 아닌 운동이나 깨작거렸으니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무심코 체중계에 오른 어느 날, 안이한 마음가짐에 금이 갔다. 75.9kg, 간발의 차이로 상한선은 넘지 않았지만 고작 백 그램의 차이는 안심할 수치가 아니었다. 뭐에 홀린 듯 안내데스크로 향한 난, 기어코 수영까지 등록했다. 


    유산소로 단련된 폐가 아니다 보니 킥 판을 잡고 25m 레인을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초등학교 때 잠깐 수영을 배운 적이 있어 금방 영법을 배우는 단계로 돌입하긴 했지만, 몰아치는 진도만큼 코와 입속으로 몰아치는 물도 많아 물배를 채우는 날도 많았다. 희한하게도 수영은 자꾸만 가고 싶었다. 늘 ‘갈까 말까’를 수백번 되뇌던 헬스장과는 달랐다. 접영까지 배우고 나서는 자신감마저 어깨 위로 차올라 주말 자유 수영 10회권까지 끊는 기염을 토했다.


    마지못해 운동한다고 실컷 떠들어 놓고서 갑자기 수영엔 한없는 편애를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땀이 난다는 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 이미 수영 시작 전, 샤워를 할 때부터 온몸이 젖어 있기에 땀이 나거나 말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수영을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지만, 체중 감량의 효과가 크진 않아 그저 슬플 뿐이다. (부질없다-이어트.)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난 후 달라진 점. 여행 가서도 물가가 아닌 물 안으로 몸을 담그게 되었다. 분명 물을 품은 장소(바다, 호수, 계곡 등)는 관광 명소로서도 자주 소개되기에 수영을 배우기 전에 떠난 여행 때도 물가에 종종 들르곤 했다. 그땐 눈에 담는 게 전부였다. 휴양지의 호텔 수영장이나 해수욕을 위해 찾은 바닷가에선 개헤엄만 칠 줄 알아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지만, 예전엔 어쩐지 입수 행위 자체에 진입 장벽 같은 게 세워진 느낌이었다. 애초에 짐을 쌀 때 수영복을 챙기지도 않았었고. 언젠가부터 여행 짐 한 구석엔 물가에 가는 일정이 있든 없든 수영용품이 자리했다. 특히 여름철엔 여행자도 이용 가능한 수영장이 주변에 있는지 검색한 적도 더러 있었다. 바다에 바로 접해 있지 않은 몽펠리에에서 굳이 바다를 찾아가 해수욕을 즐기고, 파리에서 내 나름의 수영 루틴을 만든 것도 다 수영에 대한 선호에서 비롯됐으리라.


    혹여 물 자체에 호감을 느낀다고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한 번 더 강조한다. 수영이 ‘몽파보리’한 유산소 운동이 된 건 땀에 젖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비롯됐다. 구성 성분을 따지지 않고 보자면 사실 땀도 물이다. 물 자체를 편애해서 수영하기를 좋아하는 거라면 물 밖에서 무언가 날 젖게 만들어도 크게 개의치 않아야 할 텐데, 그런 건 또 아니다. 땀이 아닌데 외부에서 사람을 적시는 존재인 비는 그래서 참 싫다. 리옹에서 불꽃놀이를 보러 가다가 맞닥뜨린 강렬한 소나기는 여전히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이런 걸 각인효과라고 부르던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를 여행 중에 마주해서인지 그 인상이 더 오래 가는 듯하다.


물과 비 얘기가 나온 김에 ‘몽파보리’의 네 도시는 아니지만, 올여름 양양으로 다녀온 서핑 여행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는데, 덕분에 따가운 햇볕이 가려지긴 했지만 비를 머금은 바닷바람은 후텁지근했다. 갑갑한 슈트 속 등줄기 위로 몇 번이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구름은 이윽고 머금고 있던 비를 조금씩 흩뿌렸다. 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분무기에서 뿜어 나오는 수분 입자 정도였지만 더위와 습기, 땀과 비의 콜라보에 바다로 들어가기 전까지 불쾌지수가 솟구쳤다. 입수 후에도 정점을 찍은 불쾌지수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이 강습 받던 한 분이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건네 왔다. 


비 맞으면서 바다에 들어와 있으니까 기분 너무 좋지 않나요?

    땀이 흐르고 비가 내려 몸이 좀 젖으면 어떠랴. 어차피 내 옷도 아니고, 어차피 바다에 들어갈 텐데. 더위와 습도 때문에 잔뜩 예민해 있지 않아도 되는 때였다. 그러려고 짬을 내어 떠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물로 향하던 내 호감이 물에 닿아 ‘몽파보리’한 편애로 남겼듯 땀이 나서 불쾌하다는 편협한 감각에 집중하지 말고 유연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울렁울렁 유연하게 흐르는 물의 형상 같은 유연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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